1492년 3월 31일, 스페인 역사의 흐름을 바꾼 유대인 추방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라과르디아의 성아(Santo Niño de la Guardia)'로 불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방령 반포 직전,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1491년 11월 16일, 아빌라에서 열린 오토다페(auto-da-fé)에서 유대인 두 명과 개종자 세 명이 종교재판소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들의 혐의는 톨레도 지방 라과르디아에서 일어난 '아동 살해'였습니다.
사건의 경위
축성된 성체를 훔친 혐의로 개종자 베니토 가르시아(Benito García)가 체포됩니다. 그는 자신이 편의를 위해 개종했으며, 개종자 후안 데 오카냐(Juan de Ocaña)·프랑코 데 템블레케(Franco de Tembleque) 및 유대인들과 함께 계속해서 유대교 의식을 지켜 왔다고 고백합니다. 이어 베니토 가르시아는 아빌라 종교재판소로 이송되었고, 그곳에는 유대인 제화공 유세 프랑코(Yucé Franco)도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가르시아는 몇 해 전 랍비 행세를 하던 유대인 의사 안토니오 데 아빌라(Antonio de Ávila)에게, 라과르디아에서 벌어진 종교 의식 범죄에 가담했다고 진술합니다.
- 어느 성금요일, 한 아이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마법(주술)을 위해 그의 피와 심장이 축성된 성체와 혼합되었다. 그 의도는 지역 전체에 광견병과 같은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랍비'(사실은 종교재판소의 밀정)에게 보고를 받은 유세 프랑코는 진술을 철회하며, 개종자 알론소 프랑코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그는 결국 범행 가담을 다시 시인합니다. 종교재판소는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여 아빌라 감옥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재판 과정은 1490년 12월 17일에 시작되어 약 1년 뒤 사형 선고로 끝납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라과르디아가 톨레도 관할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아빌라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 안토니오 데 아빌라 의사는 처음부터 종교재판소의 밀정이었는가?
- 피해 아동의 이름은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 진술과 고백은 불일치와 모순으로 가득하다.
결론
이 사건은 15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종교적 통일'이라는 명분을 만들어냈으며, 가톨릭 군주들이 반포한 추방령을 정당화하는 추가 증거로 활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당대에 유행하던 조작된 혈액비방(blood libel) 소문의 산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호기심 — 2006년 라과르디아 축제
전통이 이어져 온 라과르디아(톨레도)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 성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2006년 축제의 간략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6년 9월 23일~28일, 라과르디아 축제
2006년 축제 프로그램
종교 행사
9월 2일 토요일
18:00 — D. Julián Camacho Maroto의 지휘 아래, 라과르디아 시립 음악대 'Aurelio Mascaraque'의 연주와 함께 라과르디아의 성아 상을 은수처(Hermitage)에서 교구 교회로 이행.
9월 14일~22일
오후 9시 30분 — 라과르디아의 성아를 기리는 노베나(Novena).
설교자: D. Miguel Ángel Gutiérrez Ramirez, 코베자(Cobeja) 교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