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을까? 오쿠니와 온나가타의 숨겨진 역사

일본 전통 연극의 정수를 이루는 가부키는 여성이 출연할 수 없다는 점으로 유명합니다. 여성 역할은 온나가타(女形)라 불리는 남자 배우들이 맡는데, 이들은 종종 흉내 내려는 진짜 여인들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수백 년 동안 남녀 관객 모두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켜 온 모호하고 매혹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 가부키 배우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실제로 이 연극 형식 자체가 여성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이즈모 대신사(大社)의 무녀이자 여가 시간에는 방랑 무희로 활동했던 전설의 오쿠니(出雲阿国)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녀는 춤과 흉내극을 결합한 이 기묘한 연극 스타일을 세상에 내보였죠.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성들이 스스로 만든 공연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을까요?

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을까? 오쿠니와 온나가타의 숨겨진 역사

에도 시대의 서막, 오쿠니의 등장

시대는 에도 시대의 여명기. 도쿠가와 막부 아래 새롭게 통일된 나라에서 일본인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교토와 오사카 같은 도시에서는 유흥과 오락을 갈망하는 번영하는 부르주아 계층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예술과 문화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바로 이때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이즈모노 오쿠니입니다. 그녀는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희극 배우 극단을 이끌고 전국을 순회하며 예술을 선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즈모 신사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폭발적인 호응을 확인한 무녀는 곧바로 연예계에 몸을 담았습니다.

오쿠니 극단의 멤버들은 화려하게 꾸민 소녀들이었고, 민속 춤을 추거나 시를 낭송하며, 적당한 대가로 '당신의 아픔을 달래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픔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습니다. 오쿠니의 여배우단은 대부분 매춘부로 구성되어 있었고, 공연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잠재 고객에게 자신을 알리는 화려한 광고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에서 이런 '추가 서비스'는 특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 앞에 펼쳐진 쇼였습니다. 사실 오쿠니는 급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게 아니라, 유행하던 춤들에 자신만의 개성을 더해 재해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든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두드리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훗날 가부키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을까? 오쿠니와 온나가타의 숨겨진 역사

1603년, 가모강변에서 울려 퍼진 첫 공연

기록에 남은 최초의 가부키 공연은 1603년 교토의 가모강변, 시조 대교 부근에서 열렸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공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년 뒤에는 가부키의 인기가 너무 높아져 오쿠니는 이미 여러 차례 전국 순회공연을 마친 상태였고, 1607년에는 에도 성에서 쇼군 앞에 직접 공연하기에 이릅니다. 오쿠니의 기상천외한 성장은 멈출 줄 몰랐고, 그녀의 공식을 베끼고 발전시키는 극단들이 곳곳에서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과잉과 과시의 미학, 그리고 변하지 않는 대중성

초기 공연은 이야기가 다소 빈약한, 춤 중심의 단순한 쇼였습니다. 더 많은 것도 필요 없었죠. 쇼의 핵심 목적은 '상품'을 선보이고, 관객들이 마음에 드는 무희를 차지하려고 값을 매기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축제적이고 에로틱한 요소 너머에, 그 전위적인 비주얼과 도발적인 스토리텔링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가부키는 그 이후로 많이 진화했습니다. 관객의 입을 떡 벌리게 만들려는 집념 끝에 점점 더 과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가발과 의상, 과장된 포즈, 기괴한 분장까지.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고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 뚜렷한 대중적 성격입니다. 양식화되고 경직된 노(能) 연극과는 달리, 가부키는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한 쇼였습니다. 관객들이 공연 중에 영웅에게 환호하고 악역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은 흔한 광경이며, 즉석 개그가 오가고 배우들이 객석으로 뛰어들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집안의 관례였습니다. 그 전위적이고 건달적인 정신은 오쿠니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봉건 일본을 휩쓴 가부키 패션 열풍

그 화려하고 반문화적인 미학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연대기에 따르면 오쿠니 본인도 공연에서 남장을 하고 서구식 의상을 입어 관객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고 합니다. 알록달록한 망토, 깃털 달린 챙 넓은 모자, 그리고 예수회 선교사들을 흉내 낸 보석 십자가가 올려진 묵주까지.

시대를 앞서간 봉건 일본의 힙스터들은 이 스타일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깃발로 삼았습니다. 유행은 곧 무대를 넘어 진정한 사회 현상이 되었고, 가부키의 몸짓과 미학을 흉내 내는 도시 부족들까지 등장했습니다. 열풍은 전염병처럼 전국으로 번지며, 진짜 불꽃으로 폭발할 듯한 뜨거운 열정을 일으켰습니다.

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을까? 오쿠니와 온나가타의 숨겨진 역사

문제는 이 여배우들이 일으킨 실질적인 소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영화관에 가면 상영이 끝난 후 안젤리나 졸리나 샤를리즈 테론의 '특별한 시간'을 받을 기회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시절 스타의 총애를 얻기 위해 무대 아래에서 벌어지는 몸싸움과 난투극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게다가 인구의 3분의 1이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는 사회에서, 누군가 선을 넘으면 비극으로 이어질 위험은 명백했습니다.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1629년 당국은 개입하여 여성의 가부키 출연을 금지했습니다.

약이 독이 된 온나가타

그러나 곧 드러나듯, 처방이 병보다 더 나빴습니다. 여성을 내쫓아도 공연에는 여자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남자 배우의 여역 담당이었습니다. 가급적 젊고 아름다운 청년, 분장 없이도 젊은 숙녀로 둔갑할 수 있는 사람들이요. 이것이 바로 온나가타의 탄생이었고, 그들과 함께 스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을까? 오쿠니와 온나가타의 숨겨진 역사

이 건방진 중세의 드래그 퀸들은 콘치타 부르스트를 비롯한 오늘날의 드래그 퀸들을 한참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온나가타는 일본 대중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마저 자극했습니다. 이제 그날의 스타에게 머리와 지갑을 내던지는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기모노를 입은 잘생긴 젊은이들에게 홀딱 반해버린 숙녀들도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돈줄을 알아본 적지 않은 배우들은 인기를 등에 업고 최고가를 부르는 이에게 몸을 파는 일에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극장 주변의 소란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사태가 통제 불능에 이르자 당국은 결단을 내립니다. 가부키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 자체를 금지하고, 적령기 소년들의 출연마저 거부한 것입니다. 여성도 없고 젊은이도 없이 모든 역할을 늙은 남자들이 맡게 되면서, 한때 눈부셨던 가부키는 천박한 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막부의 실패한 검열, 그리고 온나가타의 승리

그러나 막부의 계책은 되레 발목을 잡았습니다. 무대에는 여전히 이전만큼 자극적인 장면이 넘쳤고, 사랑 이야기는 모두 동성애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남성 간의 관계가 중세 일본에서 금기는 아니었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권장하고 싶은 '건전한 오락'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극장 운영자들은 금지령을 좌측으로 흘려보내는 요령을 늘 찾아냈습니다. 심지어 남장을 한 여성들을 몰래 배우진에 끼워 넣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국물이 안 된다고요? 그럼 두 그릇이면 됩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쇼군의 신하들은 들녘에 문을 달 수 없음을 깨닫고 항복했습니다. 차선책으로 여역에 남자 배우를 인정한 것이죠. 소녀들은 이후로 확실히 가부키 무대에서 배제되었지만(배우로서의 이야기이지 관객이 아니라), 온나가타는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되었습니다.

성적 모호함에 대한 오랜 사랑, 그리고 다카라즈카

이처럼 해가 뜨는 나라 일본에서 여장에 대한 매력, 그리고 소녀처럼 보일 만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에 대한 열망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이미 일본 신화에서도 수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만화와 드라마 속 몽환적인 청년들의 사랑 이야기는 일본인들, 그리고 특히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취향은 남성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평등을 중시한다는 말처럼, 여성이 남장을 하는 전통 역시 소설, 드라마, 만화를 통해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단적으로 다카라즈카 극장이 있습니다. 반짝임이 가득한 뮤직 쇼로, 전통 가부키의 동전 뒷면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 모두 여성 배우가 연기합니다. 결국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법. 마치 무지개의 색깔처럼 말입니다.


글: R. 이바르사발(R. Ibarzabal)

출처: Male Colors: The Construction of Homosexuality in Tokugawa Japan – Gary Leupp; Kabuki ga Wakaru Hon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