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소아시아 전역 참테페 전투… 총검 백병전으로 벌어진 대격돌!

소아시아 전역 참테페 전투… 총검 백병전으로 벌어진 대격돌!

에스키셰히르에서 거둔 대승에 힘입어 그리스 제2군단은 세이디 가지 방면 진격을 명령받았고, 제13보병사단과 플라스티라스 분견대가 터키군 추격에 나섰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이어진 그리스-터키 전쟁, 이른바 '소아시아 전역'은 양측 모두에게 처절한 희생을 남긴 전쟁이었다. 특히 1921년 7월 참테페(Cham Tepe)에서 벌어진 전투는 총검과 개머리판, 심지어 돌과 주먹까지 동원된 백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극한의 접전이었다.

추격 명령과 적의 배치

그리스군이 에스키셰히르(Eskişehir)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뒤, 제2군단은 세이디 가지(Seydi Gazi) 방면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제2군단은 제13보병사단과 플라스티라스 분견대에게 터키군 추격 임무를 차례로 하달했다.

제13보병사단이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터키군은 세이디 가지 일대를 보병 3개 사단(제8·제11·제57사단)으로 방어하고 있었고, 기병 2개 사단(제2·제14사단)은 좌익에 배치되어 플라스티라스 분견대와 맞서고 있었다.

새벽 4시, 터키군의 기습

1921년 7월 7일, 터키군은 참테페 능선에 자리한 그리스 제13사단 진지를 선제공격하기로 결심했다. 터키군은 제8사단 주력에 제57사단 소속 연대 하나를 증원해 투입하고, 제11사단을 후속 제2계열로 배치하는 대규모 공세를 준비했다.

정면에서 맞선 것은 제3보병연대 제3대대(III/3)였다. 새벽 4시, 터키군은 기습 공격을 감행해 초기에는 제3대대의 진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대는 신속히 재편성되어 총검을 든 필사적인 반격을 감행했고, 터키군을 격파하며 원래 진지 전체를 되찾아냈다.

질식할 듯한 압박, 백병전의 극한

그러나 터키군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대대를 짓눌렀고, 대대는 장교 대부분이 전투 불능이 되는 막중한 피해를 입었다. 예비 중대 한 개가 도착하며 상황이 잠시 안정되었지만, 터키군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고 방어선은 돌파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제3연대 제2대대(II/3) 소속 또 다른 중대가 투입되면서, 총검과 개머리판, 돌, 주먹이 오가는 치열한 백병전 끝에 터키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터키군은 제3연대 제1대대(I/3) 구역에도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 격퇴당했다. 다만 터키군이 가하는 압박은 여전히 질식할 수준이었다. 이에 제13사단장 키몬 디게니스(Kimon Digenis) 대령은 예하 제2보병연대의 투입을 결정했다.

결정타, 나팔소리와 함께한 반격

제2연대 제1대대(I/2)는 디미트리오스 아브람포스(Dimitrios Avrampos) 중령이 지휘하는 제3연대의 지휘 아래 들어가 제3연대 방어선 강화 임무를 맡았다. 동시에 콘스탄티노스 조로기안니디스(Konstantinos Zorogiannidis) 대령이 이끄는 나머지 2개 대대는 터키군 좌익을 측면에서 찌르는 기동에 나섰다.

한편 사단 사령부는 제3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에게 제3연대 정면을 누르는 터키군 부대들을 향한 합동 공격을 명령했다. 두 대대는 제3연대 제1대대장 시메온 블라코스(Symeon Vlachos) 소령의 통합 지휘를 받았다. "전진! 전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두 그리스 대대는 총검을 고정하고 『아에라』 행진곡을 부르며 터키군 진영을 향해 쇄도했다. 두 대대는 무려 2km를 전진하며 마주치는 터키 부대 하나하나를 와해시켰다.

승리의 대가

같은 시각, 제2연대 2개 대대에게 포위당할 것을 우려한 터키군은 서둘러 후퇴를 시작했다. 참테페 전투는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고, 세이디 가지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520명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터키군의 손실은 이보다 훨씬 컸는데, 확인된 전사자만 560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