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같은 날 사망했지만 10일이나 차이가 났다

율리우스력의 탄생: 카이사르와 90일의 오차

고대 로마력은 12개월 365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보다 약간 긴 365.25일이었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수백 년에 걸쳐 쌓이면서 무려 90일의 오차가 생겼고, 수확과 직결되는 계절은 제멋대로 어긋나 버렸습니다.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은둔 중이던 알렉산드리아의 현자 소시게네스를 불러들였습니다. 그의 해결책은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것, 곧 비스 섹스투스(bis sextus), 즉 윤년을 도입하는 것이었고, 그 대가로 2월에서 하루를 거두어 갔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리기 위해 여름의 첫 달이던 퀸틸리스(Quintilis)는 율리우스(Julius)로 개명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자 뒤처질 수 없다는 듯 섹스틸리스(Sextilis)라는 달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었고, 2월에서 또 하루를 가져왔습니다. 2월을 두둔해 줄 이도 없는지라 2월은 28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새 역법이 바로 율리우스력입니다.

그레고리력의 등장: 사라진 10일

율리우스력은 1582년까지 무난히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소시게네스의 계산에도 미세한 오차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5일이 아니라 365.2422일이었던 것입니다. 차이는 극히 작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티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했고, 칙서 Inter Gravissimas로 승인된 이들의 조치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4의 배수가 되는 해는 모두 윤년으로 하되, 끝자리가 00인 해 중 앞의 두 자리 숫자가 4의 배수가 아닌 해는 평년으로 한다. 따라서 1600년과 2000년은 윤년이었지만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예외로 4000년은 4의 배수임에도 위원회는 윤년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물론 이 마지막 사안은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둘째. 달력에서 열흘을 건너뛴다. 그리하여 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 날은 10월 15일 금요일이 되었다. 역사 속에서 이 열흘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레고리력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각국이 점차 채택해 나갔습니다. 가톨릭 국가들이 가장 먼저 도입했고, 1700년에는 루터교 국가들이(새 역법보다 11일 늦은 상태로), 1752년에는 영국이 뒤따랐으며, 마지막 주자는 1927년의 그리스였습니다(13일 늦음).

같은 날 사망한 두 거장, 그러나 10일의 시차

이러한 역법 기준의 불일치가 빚어낸 대표적 에피소드가 바로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죽음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날짜인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실제로는 10일이나 시간 차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율리우스력을, 스페인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셰익스피어가 숨을 거둘 때 스페인의 달력은 이미 5월 3일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기이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10월 4일에 세상을 뜬 사람들은 역사에서 사라진 열흘이 지난 뒤인 10월 15일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고, 스웨덴에서는 어떤 해 2월이 30일까지 있는 진귀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같은 날 사망했지만 10일이나 차이가 났다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스웨덴의 점진적 개혁과 30일짜리 2월

열흘을 한꺼번에 삭제하지 않고도 오차를 바로잡겠다는 스웨덴의 독창적인 발상은 '점진적 적응'이었습니다. 1700년부터 시작해 이후 11번의 윤년마다 하루씩 빼면 1740년쯤에는 새 역법과 보조를 맞출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입니다.

그러나 1700년 이 방침을 실행하자 곧바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스웨덴은 율리우스력을 쓰는 나라들과는 하루, 그레고리력을 쓰는 나라들과는 열흘 어긋난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상업 협약이든 국제 정치든 온갖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결국 1712년 스웨덴은 이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고 율리우스력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1700년에 빼앗았던 하루(1704년과 1708년에는 더 이상 빼지 않았습니다)를 다시 붙여야 했는데, 하필 1712년도 윤년이었기에 그해 스웨덴의 2월은 30일이 되었습니다. 이후 스웨덴은 율리우스력을 유지하다가 1753년에야 열하루를 건너뛰며 그레고리력으로 최종 전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