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가 말하는 공식 탄생 이야기
코카콜라 자체가 소개하는 공식 버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청량음료의 역사는 1886년 5월 8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약사 존 S. 펨버턴(John S. Pemberton)은 소화 장애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시럽을 만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밀 레시피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잭스 약국(Jacobs Pharmacy)이 최초로 이 음료를 판매했는데, 한 잔에 5센트씩 하루 평균 9잔 정도 팔렸습니다. 120년이 넘는 긴 역사의 서막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펨버턴은 곧 자신이 만든 음료가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회계사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이 브랜드명을 고안하고 로고를 디자인했으니, 바로 '코카콜라'의 탄생입니다. 코카콜라 컴퍼니는 1891년에 설립되었고, 2년 뒤 미국 산업재산권 등록청에 상표를 등록했습니다.

존 S. 펨버턴
프랑스 설: 빈 마리아니(Vin Mariani)
하지만 코카콜라의 기원에는 다른 후보들도 있습니다. 1863년 프랑스 화학자 앙젤로 마리아니(Angelo Mariani)는 이탈리아 과학자 파올로 만테가차(Paolo Mantegazza)가 연구한 코카가 인체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보르도 와인에 코카잎 추출물을 가미한 '빈 마리아니(Vin Mariani)'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토닉은 와인 1온스당 6mg의 코카를 함유하고 있었으며,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몇 년 뒤 미국으로 수출이 시작될 무렵에는 존 펨버턴의 음료와 경쟁하기 위해 코카 함량을 7.2mg까지 높였습니다.
새로운 음료의 성공은 대단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차르는 물론이고 쥘 베른, 에밀 졸라 같은 작가들, 심지어 교황 레오 13세까지 애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교황은 늘 이 특별한 토닉 한 병을 곁에 두었다고 전해지며, 바티칸은 마리아니에게 금메달까지 수여했습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앙젤로는 메달 수여 자리에서의 교황 알현을 적극 활용해 광고 캠페인에 교황 초상을 사용할 허가를 받아냈는데, 역사상 이런 일에 응한 교황은 그가 유일합니다.

스페인 설: 아이엘로의 '콜라 코카(Kola Coca)'
2013년, 독일 시사 주간지 데어 슈피겔(Der Spiegel)은 실업가 후안 미코(Juan Micó)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그는 코카콜라의 원류가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 아이엘로 데 말페리트(Aielo de Malferit)라고 주장했습니다. 미코에 따르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1880년부터 아이엘로 리큐르 공장에서 생산해 온 리큐르 '콜라 코카(Kola Coca)'의 배합법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카페인 함량이 높은 아프리카산 나무 열매인 콜라와 페루산 코카잎 추출물을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그렇다면 배합법은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갔을까?
공장 창립자 중 한 명인 바우티스타 아파리시(Bautista Aparici)는 자신의 리큐르를 들고 유럽과 미국의 여러 상품 박람회를 돌며 밀란(1881), 시카고(1883), 필라델피아(1885), 런던(1889), 파리(1900) 등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1885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 참석했을 때 아파리시는 시상을 마친 뒤 대표 상품 샘플을 미국 판매 대리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우연일 수도, 아니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단 1년 뒤 약사 존 펨버턴이 코카콜라를 발명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53년 코카콜라가 스페인 시장에 진출할 당시, 회사는 아이엘로의 소규모 공장과 협상을 벌여 1903년에 등록된 특허를 매입해야 했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지만, 코카콜라는 저항 없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스페인 공장은 대신 알코올 버전인 '누에스 데 콜라 코카(Nuez de Kola Coca)'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볼리비아 설: 도메니코 로리니의 코카 엘릭서
마지막으로 볼리비아를 살펴보겠습니다. 1867년, 한 이탈리아 약사 도메니코 로리니(Domenico Lorini)는 사랑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이별의 아픔 때문에 볼리비아 라파스로 향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 참전 중이던 도메니코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자 연인이 그가 전사했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습니다. 귀국 후 그녀의 선택을 확인한 도메니코는 육지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지기 위해, 라파스에 있는 이탈리아 제약 연구소의 일자리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도메니코는 오래지 않아 그 지역에서 물약, 파스 또는 직접 씹는 형태로 널리 쓰이던 코카잎이 지닌 치유 효과를 깨닫게 됩니다. 이에 '보티카 이탈리아나(Botica Italiana)' 연구실에서 이 식물의 특성과 성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긴 실험 과정 끝에 호흡기와 위장 문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회복제·강장제 역할을 하는 '엘릭서 데 코카 로리니(Elixir de Coca Lorini)'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도메니코 로리니의 배합법은 어떻게 되었나?
로리니가 코카잎 파생물 연구를 계속 이어가는 동안, 그의 음료는 우연히도 미국과 프랑스로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 특허는 미국의 팍 데이비스(Parke Davis) 연구소에 매각되었고, 이들은 이 배합법을 활용해 자체 시럽을 개발했습니다. 로리니의 후손들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코카콜라는 팍 데이비스의 시럽을 기반으로 청량음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좋았던 모양이라 다른 재료들이 추가되었겠지요."
이제 어느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는, 각자 골라 믿으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