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멀린 신화 – 아서왕 전설 속 마법사 멀린의 역사와 전설

멀린 신화의 기원

멀린(Merlin)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세기 초의 문헌인 『아르메스 프라이데이인(Armes Prydein)』과 『고도딘(Y Gododdin)』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기록들에서 멀린은 단순한 예언자로 등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할은 마법사, 예언자, 그리고 조언자로 점차 확장되어 아서 왕(King Arthur) 통치의 모든 국면에서 활약하는 인물로 발전했습니다.

멀린은 태어날 당시 카에르피르딘(Caer-Fyrddin, 오늘날 웨일스의 카마던 Carmarthen)이라는 곳에서 '엠리스(Emrys)'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멀린'이라는 이름은 그보다 훨씬 나중에 갈리아어 '미르딘(Myrddin)'을 라틴어식으로 표기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출생의 비밀과 악마라는 의심

전설에 따르면 멀린은 데페이드(Dyfed) 왕국 공주의 사생아였습니다. 그러나 공주의 아버지로 알려진 메우리크 아프 마레디드 아프 라인(Meurig ap Maredydd ap Rhain)은 이 지역의 전통 족보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세레디기온(Ceredigion)과 접경한 지역을 다스리는 소규모 부왕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멀린의 아버지는 공주를 찾아 아이를 남기고 떠난 천사라고 전해지지만, 적대자들은 그의 아버지가 잠든 여성과 관계를 맺는 악령 '인큐버스(incubus)'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악마적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끼친 선한 영향력에 대항하는 균형추로 태어났다고 의심했습니다. 다행히 멀린은 어린 시절 세례를 받았고, 이 사건이 본성 속의 악을 없앴다고 여겨지지만, 좌도(左道)의 힘이라 불리는 어두운 마법의 능력은 그에게 온전히 남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 독창적인 출생 이야기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코엘 가문(House of Coel)의 방계 왕자이며 '주근깨'라는 뜻의 모르핀 프리흐(Morfyn Frych)와의 관계 때문에 어머니가 겪게 될 스캔들을 덮기 위한 장치였다는 설입니다.

보르티겐과 두 마룡의 예언

로마군이 브리튼에서 철수하고 정당한 상속자들의 왕위가 찬탈당하자, 보르티겐(Vortigern)은 색슨족을 피해 웨일스 스노도니아(Snowdonia)로 피신했습니다. 그는 디나스 엠리스(Dinas Emrys)에 산악 요새를 세워 안전을 도모하고자 했지만, 공사가 시작될 때마다 성벽은 계속 무너져 내렸습니다. 보르티겐 궁정의 술사들은 고아 한 명을 제물로 바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진단했고, 아버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진 멀린이 그 제물로 바쳐질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제물이 치러지기 직전, 멀린은 뛰어난 예지력으로 요새가 무너지는 진짜 원인이 지하 연못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연못에는 붉은 용과 흰 용이 살고 있었는데, 붉은 용은 브리튼인을, 흰 용은 색슨인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흰 용이 우세했지만 결국 붉은 용이 흰 용을 밀어냈습니다. 그 의미는 분명했습니다. 멀린은 보르티겐이 살해되고, 이어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Ambrosius Aurelianus), 그다음 우서(Uther), 마침내 위대한 지도자 아서(Arthur)가 왕위에 오를 것이며, 색슨족을 몰아낼 것은 바로 아서라고 예언했습니다.

스톤헨지를 세운 멀린

예언대로 보르티겐은 살해되었고 암브로시우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멀린은 외조부의 작은 왕국을 물려받은 듯하지만, 드루이드적 삶이라 불리는 더욱 신비로운 삶을 택하며 영토를 내려놓았습니다.

460년경 색슨족의 계략으로 평화 회담에서 브리튼 귀족 460여 명이 학살당한 후, 암브로시우스는 멀린에게 추모비 건립을 상의했습니다. 멀린은 우서와 함께 아일랜드로 원정을 떠나 '거인의 고리(Chorea Gigantum)'라 불리는 거석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 돌들을 에임즈베리(Amesbury) 서쪽의 장소로 옮겨 브리튼 귀족들의 합장묘 주위에 재배치했는데, 바로 우리가 오늘날 스톤헨지(Stonehenge)라고 부르는 그곳입니다.

아서의 탄생

암브로시우스 사후 그의 동생 우서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우서는 고를로이스(Gorlois)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 이그레인(Igraine, 일부 문헌에서는 이그에르나 Ygerna 또는 에이그 Eigr)에게 깊이 매료되었고, 코른월로 돌아온 뒤 멀린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멀린은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그레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를 자신이 보호자로 맡겠다는 약속이었고, 우서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멀린은 우서를 고를로이스의 모습으로 변신시켰고, 우서는 고를로이스의 성에 들어가 이그레인을 속여 그녀를 임신시켰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아서입니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던 고를로이스는 우서와 싸우러 나섰다가, 우서가 자신으로 위장한 사이 그의 군대에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왕의 스승, 엑스칼리버와 원탁

아서가 태어난 후 멀린은 양부 에크터 경(Lord Ector, 별칭 커닌 카인파르포그 Cynyr Ceinfarfog) 밑에서 자라는 소년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아서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 멀린은 '돌에 꽂힌 검' 시합을 준비했습니다(이때의 검은 엑스칼리버가 아닌 칼리번 Caliburn이며, 엑스칼리버는 아서가 칼리번을 부러뜨린 뒤에 얻은 것입니다). 이 시합을 통해 소년은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멀린은 브르타뉴의 바랑통 분수(Barenton Fountain)에서 신비로운 호수의 귀부인(Lady of the Lake)을 만나 왕에게 마법의 검 엑스칼리버를 바치도록 설득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멀린은 원탁(Round Table)의 창조자로 묘사되며, 아서 왕과 캐멀롯 왕국의 사건들을 끊임없이 돕고 이끄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의 기록에 따르면, 아서의 삶이 저물 무렵 멀린은 부상당한 아서를 치유하기 위해 아발론 섬(Isle of Avalon)까지 배웅했다고 합니다.

모르가나와 감옥에 갇힌 마법사

다른 이야기에서는 멀린이 아서의 이복누이 모르가나(Morgana)에게 깊이 빠져,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신비로운 마법을 가르치기로 동의했다고 전합니다. 모르가나는 놀랄 만큼 강력해져 마법 실력이 멀린을 '능가'하게 되었고, 그에게 예속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그를 감옥과 같은 동굴에 유폐했습니다. 결국 캄란 전투(Battle of Camlann)에 멀린이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서의 몰락을 부른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멀린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멀린이 유폐되었거나 안장된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영국 윌트셔(Wiltshire) 말버러 칼리지의 멀린 언덕(Merlin's Mound)
  • 스코틀랜드 트위드데일(Tweeddale)의 드루멜지어(Drumelzier)
  • 웨일스 카마던 근처의 브린 미르딘(Bryn Myrddin, 멀린의 언덕)
  • 프랑스 브르타뉴 팽몽(Paimpont) 근처의 르 톰보 드 멀린(Le Tombeau de Merlin, 멀린의 무덤)
  • 웨일스 르린 반도 앞바다의 이니스 엔리(Ynys Enlli, 바드지 섬)

미스터리로 남은 마법사

이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멀린 전설입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그를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미친 자로, 짐승처럼 숲속에서 살아가는 야만인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멀린은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설인지 오늘날까지도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가장 수수께끼 같은 존재 중 하나입니다. 알려진 것은 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와 혼란스러운 이야기들뿐이며, 그의 정체를 특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현자처럼 완벽한 조화 속에서 다스리는 법을 아서에게 조언하고 정령들과 대화하는 순간의 명료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성을 내려놓고 감정에 속아 모르가나에게 빠져 자신의 마법을 가르친 인간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중성이 멀린을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며, 오늘날에도 '마법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멀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