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진토닉, 제국의 의사들보다 위대한 구원자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들이 합쳤을 때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물론 이것이 처칠의 실제 발언인지는 확실치 않다. 파울로 코엘료와 처칠에게 돌려지는 모든 명언이 실제로 그들의 말이라면, 그들은 다른 일을 할 시간조차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발언의 진위와 관계없이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오이 슬라이스도, 딸기도, 꽃잎도, 캐슈너트도, 각종 허브도 없는 순수한 클래식 진토닉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름 그대로, 진과 토닉을 섞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얼음과 라임 또는 레몬 조각 정도만 선택 사항으로 남겨둘 뿐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진토닉의 역사를 살펴보자.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약으로 태어난 진: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와 '예네베르'

17세기 중반, 독일 출신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의사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 드 라 보에(Franciscus Sylvius de la Boe)는 몸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위장과 신장 통증을 완화할 약용 음료를 찾고 있었다. 주니퍼(노간주나무)의 이뇨 작용에 주목한 그는 곡물에서 증류한 알코올에 주니퍼 열매를 넣어 증류했고, 그 결과물을 "예네베르(jenever)"라고 불렀다. 우리가 아는 '진'의 시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프랑스어로 주니퍼를 뜻하는 제네브리에(genévrier)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학명 주니퍼루스(juniperus)에서 왔다는 설이다. 이름의 기원이 어찌 되었든, 예네베르는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약용 제제들이 그랬듯이 약국에서 선술집으로 넘어가게 된다.

새로운 제품이었고, 만들기 쉬웠으며, 맥주나 다른 술들보다 세금이 적게 붙었기 때문에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정문을 활짝 열고 잉글랜드에 들어섰는데… 문제가 생겼다. 값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하층민들이 미친 듯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로 '진(gin)'이라 불린 이 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고, 결국 18세기에는 '진 크레이즈(Gin Craze)', 즉 '진 광풍'이라 불리는 사회 현상까지 낳았다. 폭음이 만연하고 악덕과 사회적 타락과 연관된 이 시기를 두고 당시 한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했다.

저주받은 악마 진, 분노에 가득 차,
인류를 사냥감 삼아.
치명적인 잔 속으로 들어와,
우리의 생명을 앗아간다.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왕정은 마치 요즘 거리에 퍼지는 새로운 마약과의 전쟁에 나선 것처럼 강경하게 대응해야 했다. 소비 제한이라는 무기를 들고 진에 대한 십자군 원정을 개시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진의 이야기를 접어두고, 칵테일의 또 다른 재료인 토닉으로 넘어가 보자.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말라리아와의 싸움: 슈웹스와 토닉 워터의 탄생

독일 출신 사업가 요한 야콥 슈웹페(Johann Jacob Schweppe) — 그렇다, 바로 그 슈웹스(Schweppes)의 슈웹페다 — 는 이산화탄소를 녹인 탄산 미네랄 워터의 효과를 연구했고, 1792년 설탕과 각종 과일을 첨가한 탄산음료를 출시했다.

그로부터 1858년, 세포이 반란을 진압하고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영국령 인도 제국(브리티시 라지)' 체제가 시작되던 시기, 사업가 이라스무스 본드(Erasmus Bond)가 인도에 주둔한 병사들에게 안성맞춤인 새로운 조합을 발명한다. 바로 퀴닌을 첨가한 탄산수, '토닉 워터'였다. 덕분에 말라리아 치료에 필요한 치료 용량의 퀴닌을 훨씬 쉽고 소화하기 좋게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1870년에는 슈웹페 역시 같은 길을 걸어 "인디안 퀴닌 토닉(Indian Quinine Tonic)"이라는 약용 음료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탄산수에 든 설탕으로도 퀴닌의 강렬한 쓴맛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 — 병사든 식민지 관리든 — 말라리아 예방용 토닉 워터에 한 잔의 진을 부어 섞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값싼 술이 비겁함을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재료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이번에는 쓴맛을 달래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진토닉은 영국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끝없이 긴 전역을 버티는 최고의 동반자가 되었다. 게다가 병사들이 영국으로 돌아와 선술집에서 이 술을 주문하면 '동양의 영웅(Heroes of the East)'으로 불리며 대접받았고, 이는 소비를 더욱 부추겼다. 성공이 워낙 컸던 탓에 영국에서는 매년 10월 19일을 '진토닉 데이(Gin Tonic Day)'로 기념한다. 하지만 하필 왜 이 날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진토닉은 대영제국의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은 영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오늘날의 토닉, 그리고 주의할 점

참고로, 오늘날 시판되는 토닉 워터는 말라리아 치료제로는 전혀 효과가 없다. 필요한 퀴닌 용량의 10분의 1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할 것! 과도하게 섭취하면 '시코니즘(cinchonism)'이라 불리는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과음은 금물이다. 그런데 시코니즘이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그 답은 수요일에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