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드리운 역사의 페이지
역사에는 저마다의 맥락 속에서 그 목적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제시된 설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의심과 미궁이 드리워지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음모(conspiracy)입니다. 역사는 수없이 많은 작은 음모들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암살이라는 형태를 띤 거대한 음모도 등장합니다. 어떤 사건은 영원히 풀리지 않은 채 남고, 또 어떤 사건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후안 프라임(Juan Prim) 장군의 암살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프라임 장군의 정치적 역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 반복해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의 암살이 스페인 근대 입헌군주제의 수립을 좌초시켰다는 점입니다. 아마데오 1세(Amadeo I)가 상징하는 군주제 모델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스페인의 정치 과두세력, 그리고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 대륙의 패권을 두고 격돌하던 복잡한 국제 정세가 암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


프라임의 미라 사진과 마리아 델 마르 로블레도(Mª del Mar Robledo)의 법의학 해설. 출처: EL PAÍS
법의학이 밝혀낸 충격적인 진실
캐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Universidad Camilo José Cela) 연구팀이 수행한 법의학 조사는 놀라운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프라임은 1870년 12월 27일 겪은 테러에서 입은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벨트로 목을 졸려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를 죽였을까요? 실행범으로 지목된 인물들은 공화파로 보이며, 경찰의 공조 아래 움직였고 체포된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공권력은 공화파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지만, 이 가설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라임 테러 현장을 재현한 그림. 출처: ABC
역사학자들이 지목한 배후 세력
역사학자들은 소위 '이중 유도(double induction)' 가설을 제기합니다. 한 사람은 몽팡시에 공작(Duke of Montpensier)입니다. 그는 왕위 선거에서 아마데오 디 사보이아(Amadeo of Savoy)에게 패배하며 왕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었던 인물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세라노(Serrano) 장군입니다. 그는 강한 정치적 야망을 지닌 인물이자, 프라임의 죽음으로 가장 큰 정치적 실익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라임 암살 사건은 스페인 근대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총탄이 아니라 교살이었다는 법의학적 발견은, 이 사건이 단순한 돌발 테러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적 암살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