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기록들은 도미티아누스에 대해 극도로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 근거는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 같은 로마 역사가들의 서술, 그리고 사망 후 원로원이 '기록 말소형(damnatio memoriae)'을 선고했다는 사실이다.
원로원이 기록 말소형을 선고한 황제는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아누스 단 세 명뿐이다. 칼리굴라와 네로에게는 일부 옹호론과 재평가 움직임이 있었던 반면, 도미티아누스에 대해서는 그런 시도조차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최악의 황제처럼 보이지만, 과연 실제로 그럴까?
제11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제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차남이자 제10대 황제 티투스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부터 유대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티투스와 달리, 도미티아누스는 군사적·정치적 경력이 전혀 없었다.
물론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도미티아누스가 즉위했을 때 나이 30세였고, 로마에서는 관례상 30세가 넘어야 공직에 나설 수 있었다. 옥타비아누스처럼 10대에 집정관에 임명된 예외도 있었지만, 선정(善政)으로 유명했던 티투스의 통치가 불과 2년 만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티투스를 암살한 사람이 도미티아누스라는 소문은 당대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티투스는 동생보다 10살 위였고, 베스파시아누스 본인이 티투스 다음 황제로 도미티아누스를 지정하기까지 했다. 암살할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티투스는 키가 작고 미남과는 거리가 먼 외모였지만, 도미티아누스는 키 큰 미남이었다. 만약 반대라면 질투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하게 황제가 될 사람이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있을까?
도미티아누스는 불필요하게 멸시받을 인물이 아니다.
도미티아누스에 대한 주요 비판
- 동생을 암살했다
- 남색을 했다
- 로마 시민들을 자주 처형했다
- 국고를 낭비했다
일부는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동생 암살은 앞서 말했듯 근거가 없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나올 정도로 미움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즉위 때 일괄 지급금을 주지 않았거나, 다른 정책과 성격 자체가 밉었다는 뜻일 것이다.
남색에 대해서는 불분명하지만, 오현제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도 이 점을 공공연히 드러낸 인물이었으므로, 이것만으로 도미티아누스의 평가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참고로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한때 기록 말소형 선고가 검토될 뻔했다.
도미티아누스가 미움받은 진짜 이유
도미티아누스가 미움받은 핵심은 바로 '테러 정치'였다.
그는 델라토르(Delator)라고 불리는 전속 고발자를 이용해 원로원 의원들을 자주 고발하게 했다.
델라토르 자체는 공화정 시대부터 존재했는데, 피고발자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몰수된 재산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대신 선거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고, 미움받는 일이라 별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미티아누스는 델라토르를 빈번히 동원해 원로원 의원들을 고발하게 했고, 그중 8명이 사형, 5명이 추방형을 받았다. 이것이 훗날 기록 말소형 선고의 원인이 되었다.
국고 낭비에 관해서라면, 베스파시아누스가 착공한 콜로세움을 완공한 것도 도미티아누스였고, 경기장과 극장 등 많은 공공 건설을 진행했다. 문제가 됐던 것은 팔라티노 언덕에 대규모 궁전을 지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개인 저택이 아니라 황제의 관저라는 공적 거주지였고, 오현제 시대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 파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도미티아누스 시대에 지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병사들의 급여를 크게 인상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군단은 더욱 강력해졌다.
테러 정치 외의 원인들
- 다키아 원정의 아쉬운 종결
- 종신 재정관 취임
다키아 원정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포로를 잡고도 몸값을 지불해 풀어준 것은 로마 시민들에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포에니 전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로마는 포로로 죽는 것은 환영하지만 몸값을 주고 석방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도미티아누스는 일부러 종신 재정관 직책을 만들고 스스로 취임했다.
켄소르(Censor)라고 불리는 재정관은 관례상 경험이 풍부한 집정관이 맡으며, 주요 역할은 수십 년에 한 번씩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명예직 같은 느낌이지만, 공공 사업 발주권과 원로원 의원의 의석 박탈권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런 인물에게 붙잡혀 있던 원로원 의원들이 괴로워하지 않았을 리 없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업적
무력 확장이 그의 공인지는 모르겠지만, '게르마니아 방벽(Limes Germanicus)'의 구축은 분명 그의 공적으로 말해야 한다.
이것은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유역에 장벽을 구축하는 것으로, 발상은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슷하다.

제정 로마의 가상 적국은 언제나 페르시아와 게르만이었고, 이 방벽이 오랫동안 돌파되지 않으면서 오현제 시대가 비교적 평화로울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방벽은 오현제 시대에 해체되기는커녕 더 잘 정비되었다.
또한 이것은 후세의 관점이지만, 어쩌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최대 업적은 트라야누스의 발굴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잘못된 통치와 관련이 있는데, 게르마니아 총독 사투르니누스가 병사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도미티아누스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당시 스페인에 있던 트라야누스를 마인츠로 급파했고, 반란 진압은 막시무스라는 장군이 담당했지만, 트라야누스를 게르마니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트라야누스를 가장 중요한 땅인 게르마니아에 배치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고, 훗날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의 로마는 영토를 최대치로 확장했다.
다만 이때 반란에 연루된 장교를 서둘러 처형한 것도 평가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
도미티아누스의 죽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죽음에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다. 기록이 완전히 말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사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범인의 이름은 알려져 있다. 스테파누스라는 이름의 해방 노예였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황후 도미티아의 해방 노예였다.
황제 암살이 절대 단독 범행일 리 없는데, 스테파누스 외의 배후는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배후금을 누가 댔는지도 모른다.
황제 암살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침소에는 호위병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도미티아누스 외에는 저택에 호위병도 노예도 없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미티아누스를 매장한 유모가 그의 유골을 조카 율리아의 유골과 섞었다고 한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와 조카 율리아는 남녀 관계였던 모양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아내 도미티아가 계획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완전히 미스터리한 사건이지만, 원로원파는 그날 네르바를 추대하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기록 말소형을 선고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대부터 네르바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암살 배후라는 견해가 강력하다.
합리적으로 따지면 배후는 네르바 또는 원로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지 여부도 어려운 문제다.
황제에게는 은퇴가 없다. 황제를 은퇴시키고 싶다면 암살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 대통령처럼 임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도미티아누스의 아버지가 만든 황제법이라고 한다.
황제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하고 불가침의 권리다.
그렇다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암살자를 생각할 때, 진짜 배후는 로마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실행범은 스테파누스였지만, 그는 아우구스타(황후)인 도미티아의 지배 아래 있었을 것이고, 원로원이 이 계획을 몰랐을 리 없어 보인다.
도미티아누스에 대한 재평가
도미티아누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타키투스나 수에토니우스 같은 역사가들도 모두 원로원 의원이었다.
수에토니우스의 경우 황제 열전을 쓴 것이 하드리아누스 시대였다고 하므로, 도미티아누스의 평판이 불필요하게 깎였을 가능성이 높다.
타키투스의 경우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원로원 의원이 되었으므로, 아마도 테러 정치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물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위대한 인물인 것은 아니다. 테러 정치와 군사적 재능 부족을 감안하면 폭군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로마 전체 역사를 보면 그보다 못한 황제가 많았다.
기록 말소형을 선고받았음에도 그의 공공 건축물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앞서 말했듯 그가 구축한 게르마니아 방벽은 훗날 로마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황제로 몰린 그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