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안토니누스 피우스"라는 이름 자체는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하고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바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비로운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오현제(Five Good Emperors)'로 불리는 다섯 황제 중 네 번째 인물입니다. 물론 오현제라는 평가는 후대가 내린 것이므로, 당시 본인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지는 선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편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가 어떤 황제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안토니누스 피우스'라는 이름부터 보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별칭입니다.
본명은 꽤 깁니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폰티펙스 막시무스(Imperator Caesar Titus Aelius Hadrianus Antoninus Augustus Pontifex Maximus)
이렇게 긴 본명 대신 '피우스(자비로운 자)'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싶어지는 인물입니다.
'피우스'라는 별칭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전해집니다. 원로원이 신격화를 거부하려던 양부 하드리아누스를 눈물로 옹호했다는 설, 하드리아누스가 처형하려던 사람들을 구해냈다는 설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한 일화가 없더라도, 그 인품만 보면 충분히 '자비로운'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후 파우스티나와의 유명한 대화에서 그는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국의 주인이 된 지금도, 내가 가진 것은 황제가 되기 이전과 다르지 않소. 속되거나 저열한 것은 하나도 없소."
로마 황제는 즉위 시 민중에게 하사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돈은 보통 '황실 국고'라 불리는 황제의 재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이 돈을 자신의 사재(私財)에서 냈습니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새로 취임한 총리가 축하금으로 국민 한 사람당 현금을 뿌린 격입니다.
평소에는 검소했지만, 이런 때에는 아낌없이 큰돈을 쓰는 인물이었죠. 모든 것이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훗날 황제가 될 양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저서 『명상록』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사적인 생활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사저나 별장 건축에 열을 내지 않았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옷의 수량이나 색의 다양함에 연연하지 않았다. 노예도 외모로 고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무례하게 굴지 않았고, 허세를 부리거나 상대를 공격하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땀 흘려 다스렸다'는 말처럼 그의 모든 행동은 숙고 끝의 결과였기에 시기와 경우에 딱 들어맞았고, 말과 행동에 질서와 일관성, 조화를 가져다주었다는 평가입니다.
만약 로마 시대에 인품 랭킹이 있다면, 아니, 세계사 전체에 인품 랭킹이 있다면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분명 1위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치세의 능신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
후한 말의 조조를 두고 '치세의 능신(治世の能臣), 난세의 간웅(亂世の姦雄)'이라 불렀는데, 안토니누스 피우스만큼 이 말에 잘 어울리는 인물도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대체 무슨 일을 했을까요?
첫머리의 질문에 답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로마 황제는 군의 최고사령관이기도 했지만,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전쟁을 거의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거의'라는 것은 브리타니아의 반란을 진압한 정도이며, 하드리아누스 방범 북쪽에 '안토니누스 방범(Antonine Wall)'을 축조한 것이 대표적인 군사 관련 업적입니다.
피우스 자신은 군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황제가 된 것으로 보이며, 인사도 하드리아누스의 체제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전대 황제처럼 숙청 같은 일도 벌이지 않았습니다.
공공사업 역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노선을 이어받아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건축물은 아내 파우스티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운 신전뿐이라고 하는데, 부부 사이는 매우 좋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잇달아 요절했지만, 아내의 얼굴을 새긴 화폐를 발행하고, 아내가 죽은 뒤에는 고아원을 세우는 등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국을 순회하던 하드리아누스와 달리 피우스는 기본적으로 로마에 머물렀고,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드리아누스의 총애를 받은 것을 보면 크고 잘생긴 미남이었던 듯하며, 목소리도 좋았다고 합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화려한 정책은 없지만 실수도 없었으니,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트라야누스 시대에 최대 판도를 이룬 로마 제국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축소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올바른 통치를 하기에는 너무나 광대했던 것입니다.
무능한 군주라면 더 확장하려 들면서 지출을 불리고, 국가의 쇠퇴를 가속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대의 로마 제국 판도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제국을 큰 전쟁 없이 유지한 것 자체가 어떤 업적보다 뛰어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말은 18세기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사용한 용어이지만, 로마가 진정으로 평화를 누린 시기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군주란 백성과 싸우는 군주가 아니라, 평화로운 세상을 지켜내는 군주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진귀한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