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세기의 사랑! 왕관보다 여자를 택한 영국의 에드워드 8세

영국 역사에는 왕위에서 물러난 국왕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 세 명은 음모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났지만,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왕관을 내려놓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에드워드 8세입니다.

그가 퇴위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왕좌를 건 사랑. 글로 적으면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요?

"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곧 망할 것이다"

에드워드 8세는 1894년, 조지 5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한마디로 타고난 국왕입니다.

당시 영국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아직 생존해 있었고, 잉글랜드 국왕은 동시에 인도 황제였습니다. 대영제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죠.

북미, 오세아니아, 인도, 남아프리카, 본토까지 합친 대영제국의 영토는 옛 몽골 제국의 크기마저 넘어섰습니다. 에드워드는 세계 최대 판도를 자랑하는 가장 번영한 제국의 왕으로 태어난 셈입니다.

순탄하게 성장한 에드워드는 웨일스 공이 되었고, 아버지 조지 5세가 서거하면 대영제국의 국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지 5세는 생전에 "내가 죽고 나면 저 아이는 1년 안에 스스로를 망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조지 5세의 이러한 예언은 어떤 면에서는 편견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성공회의 수장으로서의 국왕

에드워드 8세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는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이라는 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미국인이라서 안 된다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월리스 심슨이 당시에도 기혼자였다는 사실, 즉 에드워드 8세가 불륜 관계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세에는 프랑스 국왕이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과 갈등을 빚다 파문당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영국은 헨리 8세(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시대에 교황과 결별하고, 잉글랜드 국왕이 수장인 성공회를 세웠습니다.

바로 그 수장의 자리에, 불륜 상대와 재혼하려는 인물이 앉으려 한 것이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에드워드 8세는 월리스의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했고, 때로는 폭력까지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합니다. 1929년에는 대공황이 발발했고, 1933년에는 나치가 독일 제1당으로 부상했습니다. 세계가 극도로 불안정하던 이 시기, 영국 국민들은 왕위 계승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공회, 의회, 왕실, 그리고 국민. 즉 영국의 모든 세력이 에드워드 8세가 국왕으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의 결혼을 지지한 유일한 인물은 윈스턴 처칠뿐이었다고 합니다.

여자를 택한 국왕

결론적으로 에드워드 8세는 여자를 택했습니다.

1936년 12월, 에드워드 8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퇴위를 선언했습니다. 조지 5세가 서거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새 국왕은 말더듬이였던 동생 조지 6세였습니다. 유명한 경마 대회 '킹 조지 6세 스테이크스'가 바로 이 국왕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 과정은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퇴위 후 에드워드는 윈저 공작(Duke of Windsor)의 작위를 받았고, 이혼이 확정된 월리스와 결혼했습니다. 부부는 이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왕실과는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윈저 부부는 나치의 통제 하에 있던 독일을 방문해 영국 국민들의 분노를 다시 한번 샀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프랑스에 머물렀으며, 1972년 프랑스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에드워드 8세는 암군이었는가, 폭군이었는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NO입니다.

영국 국민들이 절대 납득하지 않겠지만, 에드워드 8세는 '폭군'이나 '암군'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암군이나 폭군이란 능력 없이 왕좌나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그 어려운 시기에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왔습니다. 동기가 무엇이든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약 에드워드 8세가 계속 대영제국의 국왕으로 군림했다면, 영국 정치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최악의 경우 독일이 영국을 점령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 소련, 독일이 세계를 삼분하는 국면이 펼쳐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왕족도 결국 사람입니다. 누구와 결혼할 권리가 없겠습니까?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는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했다고 전해집니다. 에드워드 8세는 훗날 "다시 태어나도 그녀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월리스 역시 에드워드 8세가 세상을 떠날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전개를 좋아하겠죠. 영국인들은 분노했고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 또한 어떤 의미로는 흥미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