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

로마사 연구의 양대 거장, 에드워드 기번

후대 로마사 연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학자는 독일의 테오도어 몸젠과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작 『로마 제국 쇠망사』를 남긴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

불운했던 어린 시절

기번은 1737년 잉글랜드 햄프셔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지만, 무사히 자란 사람은 기번 하나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1720년 남해 거품 사건으로 재산을 잃었으나, 이후 가문은 성공적으로 회복되었고 기번의 아버지는 상속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번은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약했고,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옥스퍼드 입학과 가톨릭 개종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다닌 뒤, 기번은 14세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신학 공부에 몰두하던 중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파였기에, 아들의 진로가 막힐 것을 우려한 아버지는 기번을 옥스퍼드에서 퇴학시키고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습니다. 로잔에서 기번은 가톨릭에서 다시 프로테스탄트로 되돌아가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로잔에서의 수학 시절

로잔에서 보낸 시절 동안 기번은 존 로크, 그로티우스, 파스칼 등의 저작을 탐독했으며, 라틴 문학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쌓은 고전 교양은 훗날 그의 역사 저술을 떠받치는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기번은 177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 곁에서 지냈습니다. 이 무렵 그는 집필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는데, 끝내 출간되지 못한 스위스사 집필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로마 유적과의 만남, 그리고 대작의 탄생

1764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로마의 유적을 직접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기번은 본격적으로 로마사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776년 첫 권을 내놓은 『로마 제국 쇠망사』는 완성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트라야누스 황제의 전성기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까지,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거대한 화폭처럼 그려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

기번은 특히 '오현제 시대'를 이상화하여,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를 "인류가 보낸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묘사했습니다. 기번의 이러한 역사관은 오랫동안 세계사 서술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기번의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도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쇠퇴가 이미 오현제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년과 죽음

1788년 기번은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179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수잔 커쇼드라는 이름의 연인이 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기번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참고로 수잔 커쇼드는 훗날 프랑스의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와 결혼하여, 프랑스 혁명기의 지식인 스탈 부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