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뻔했던 '텔-피우수츠키': 피우수츠키 마르셰프의 이름을 딴 도시 계획

1935년 여름, 예루살렘 폴란드 총영사관에 제출된 기묘한 제안

1935년 6월, 예루살렘 주재 폴란드 공화국 총영사관에 한 남자가 팔레스타인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새 정착지의 이름이 불과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난 유제프 피우수츠키(Józef Piłsudski) 마르셰프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기로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유대인 이민의 물결

전간기 내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는 새로운 도시와 정착촌, 키부츠(kibbutz)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알리야(aliyah)와 하아팔라(ha'apalah), 즉 유대인들의 합법적·비합법적 이민과 식민화 과정은 특히 1930년대 후반에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로 향한 난민 대부분은 나치 독일 출신이었지만, 폴란드계 유대인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공동체가 유제프 피우수츠키를 특별히 깊이 기억하고 존경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뻔했던  텔-피우수츠키 : 피우수츠키 마르셰프의 이름을 딴 도시 계획

'텔-피우수츠키(Tel-Pilsudski)' 건설 프로젝트는 즉각 폴란드 외교 사절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은 이 건과 관련해 T. 코빌랜스키(T. Kobylański)가 보낸 서신입니다.

영사관의 신중한 반응

제안자 필립슨(Philipson, 실제 이름은 슐림 필롭존/Szulim Filopzon)의 설명에 따르면, 텔-피우수츠키는 고(故) 마르셰프를 영원히 기리는 영구적인 기념물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 자체가 폴란드 외무부에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외교관들은 신청자 본인의 인물상, 구체성이 부족한 프로젝트, 그리고 필립슨의 진짜 의도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건을 담당했던 예루살렘 주재 폴란드 총영사 즈지스와프 쿠르니코프스키(Zdzisław Kurnikowski) 박사에게는 외무부가 제안자에 대해 내린 평가가 생생하게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바르샤바 본부는 현지 사무소에 "스탄리스와프 필립슨 씨의 언론 활동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며,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따라서 노련한 외교관은 신청자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늘어놓거나, 필립슨이 대표하던 '가제타 한들로바(Gazeta Handlowa)'의 간행물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화 상대를 소외시키고 싶지 않았던 쿠르니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마르셰프의 위대함과 그의 역사적 역할을 고려할 때, 이러한 분야의 주도권이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유대인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로부터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성공의 보증이 될 뿐만 아니라, 마르셰프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더욱 걸맞을 것입니다."

실제로 1909년 텔아비브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텔-피우수츠키도 같은 방식이 될 수 있을까요? 그는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적 인물, 즉 오랫동안 세계 시오니스트 기구(WZO) 의장을 지냈고 1935년부터는 유대 기구(Jewish Agency) 의장을 맡고 있던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 본인을 지목했습니다.

쿠르니코프스키는 상사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필립슨의 아이디어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로부터의 정착지 부지가 종종 유대 기구에 의해 경제적 압박 속에 매입되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뻔했던  텔-피우수츠키 : 피우수츠키 마르셰프의 이름을 딴 도시 계획

깊은 숙고 끝에 쿠르니코프스키 영사는 필립슨의 구상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랍 사회의 반응과 토지 문제

한편, 강화되는 식민화는 아랍인들의 눈에 그들의 중대한 국가적 이익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토지가 매입되고 또 하나의 유대인 정착촌이 생길 때마다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극심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따라서 그중 하나에 피우수츠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금까지 진심 어린 존경과 호의로 마르셰프를 대해 온 아랍 사회 안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뻔했던  텔-피우수츠키 : 피우수츠키 마르셰프의 이름을 딴 도시 계획

게다가 필립슨은 정착지 건설용 토지를 어떻게 확보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했습니다. 폴란드 외교가 우려한 것은 막연한 프로젝트와 실행 방안의 부재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결국 필립슨에게는 고(故) 마르셰프의 이름과 유대인 사회의 그에 대한 애정을 토지 투기에 이용할 위험이 환기되었습니다. 물질적 문제에서 스스로 금욕주의자였던 유제프 피우수츠키가 '재산 축적'을 묵인했을 리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낙담한 발기인은 스스로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습니다.

출처

미국 유제프 피우수츠키 아카이브 소장, 철 701/1/91 — 예루살렘 총영사관, 조의 메시지, 조문 방문 기록, 마르셰프 추모식 보고서:

  1. T. 코빌랜스키, 팔레스타인에서의 피우수츠키 마르셰프 추모에 관한 서신. 1935년 6월 4일자
  2. S. 필립슨, '텔-피우수츠키' 도시 명명에 관한 서신. 1935년 10월 30일자
  3. Z. 쿠르니코프스키, 팔레스타인 '텔-피우수츠키' 도시 건설에 관한 서신. 1935년 9월 27일자
  4. Z. 쿠르니코프스키, 팔레스타인 '텔-피우수츠키' 도시 건설에 관한 서신. 1935년 11월 23일자

본문에 인용된 구절들은 Z. 쿠르니코프스키의 저널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