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마지막 기독교 요새였던 로도스 섬의 함락은 교황과 유럽 열강들을 일시적으로 각성시켰다. 이 각성에 다시 한번 그리스인이 기여했으니, 바로 니케아 제국 황실 라스카리스 왕조의 후손, 이아노스 라스카리스(Ianos Laskaris)였다.
라스카리스 가문은 그 후에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또 다른 라스카리스는 몰타 공방전에서 구호기사단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의 후손 중 한 명은 훗날 기사단의 대수장(Grand Master)이 되었다.
1525년, 카를 5세 앞에서의 연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525년 독일 황제 카를 5세(Charles V) 앞에서 행한 라스카리스의 연설이다. 이 연설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 역사를 언급하며 서구인들에게 그리스에게서 받았고 여전히 빚진 것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 정신의 파괴자'라며 비잔티움을 반(反)헬레니즘적 존재로 폄하하는 일부 논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내용이기도 하다.
연설문 전문
"내가 고대 그리스를 말한다는 것은, 모든 덕성과 지혜로 세계를 세련되게 하고 정화시킨 위대한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이아손 같은 영웅들이며."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로는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티데스, 에파미논다스, 왕으로는 아게실라오스, 필리포스, 알렉산드로스, 인류 학문의 첫 개척자이자 시인·역사가·군주들의 덕행을 기록한 보물창고인 호메로스, 핀다로스, 헤시오도스, 크세노폰, 투키디데스, 플루타르코스, 신과 인간의 해석자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히파르코스, 스트라본, 프톨레마이오스, 의학 저술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 신학자들의 합창단인 대 바실리오스,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 금구(金口) 요한네스 등, 온갖 분야와 학문에서 빛나는 무수한 걸출한 인물들이 있었노라."
"그리스인들은 또한 다른 민족들, 특히 이탈리아인, 게르만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등 유럽의 주민들을 가르침으로써 문명을 전파했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법률과 종교와 도덕을 부여했다."
황제에게 보낸 호소
"페하(陛下)께서는 공정함에 있어 모든 이가 그리스 민족에게 지닌 의무를 헤아려 주시기를, 진실을 인정하여 그리스를 자신들의 어머니로 여기고, 앞서 말씀드린 위인들을 스승이자 보호자로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노라."
"이렇듯 고대 그리스의 후손들이 지금은 예속의 멍에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품에서 빼앗겨 기독교인들과 싸우러 내몰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은 밀서와 끊임없는 밀사들을 통해 온갖 방법으로 미래의 황제 폐하께 자비와 은혜를 구걸하고 있다. 그들은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폐하께서 그들을 위해 행동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노래다."
"그리고 그들이 수적으로 열세이거나, 힘이 약하거나, 혹은 무기와 군수품이 부족하여 이 위업의 성공에 큰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안타깝게도 조국의 자유를 위한 거지 같은 사도였던 라스카리스는, 독일 군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