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19년 크림반도의 그리스 제2보병연대... 갈등과 명예의 기록

1919년 크림반도의 그리스 제2보병연대... 갈등과 명예의 기록

1919년, 연합국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 제1군단(SS)은 프랑스군과 러시아 '백군(白軍)' 편에 서서 볼셰비키와 싸우기 위해 당시 '남러시아'라 불리던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로 파병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1군단의 주력 부대는 오데사에서 헤르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상륙했으며, 제13보병사단(MP) 소속 제2보병연대(SP)는 3월 10일(구력)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군이 마주한 군사적 상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크림반도의 지리와 방어 상황

크림반도는 세 개의 지협을 통해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서쪽 끝에는 폭 9km의 페레코프 지협이 있었고, 중앙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토사가 퇴적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수로, 그리고 역시 인공적인 아라바트 수로가 자리했습니다. 반도와 북방을 잇는 모든 도로와 철도 노선이 이 세 갈래를 통과했습니다.

이 지협들의 방어는 '백군' 러시아 부대가 맡았습니다. 이들은 화려한 호칭의 '러시아 의용군'을 자칭하며 두 개의 '사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전체 병력은 4,000명에 불과했습니다. 프랑스 제157보병사단도 크림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실제 병력은 겨우 500명이었습니다. 여기에 독일로 귀환을 기다리던 독일군 부대들도 크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야 할 볼셰비키 세력은 크림 내부에 이미 다수 존재했으며, 언제든 반도를 침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부 볼셰비키 부대도 최소 2만 명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초기 볼셰비키의 페레코프 지협 도하 시도는 프랑스군의 지원 덕분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상륙한 제2연대

제2보병연대는 완편이 아닌 상태로 세바스토폴에 도착했습니다. 연대장 네오코스모스 그리고리아디스(Neokosmos Grigoriadis) 중령 휘하에는 기관총중대의 수송 장비 없는 제I/2·제II/2 보병대대, 제III/2 대대 사령부와 그 산하 제9중대, 그리고 제XIIIa 야전병원이 있었습니다. 연대 전체 병력은 2,038명, 이륜 마차 30대, 군마 30필에 불과했고 탄약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당시 크림반도에는 약 6만 명의 그리스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들을 징집하자는 구상도 나왔지만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제2연대가 도착했을 때 세바스토폴은 최소 1만 5천 명의 볼셰비키 동조자가 참여한 대규모 파업으로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질서 회복에 실패한 상황이었고, 그리스군의 도착과 함께 프랑스 지휘관 루이예(Rouillet) 대령이 통제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시의 질서는 회복되었습니다.

심페로폴 배치와 늘어지는 방어선

3월 13일, 프랑스군 사령부는 미차코스(Vasilios Mitsakos) 소령이 지휘하는 제I/2 대대에게 심페로폴로 이동해 경비 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대대는 명령대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프랑스군은 제1중대(팔라스카스 중위 지휘)를 기관총 소대로 증강해 얀코이로 파견, 그 자리의 백군 부대를 지협 방어 강화를 위해 교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리스 분견대는 볼셰비키의 매복 공격으로 첫 손실(1명 전사, 1명 부상)을 입었습니다. 3월 15일에는 제2중대(파파디미트로풀로스 중위 지휘)가 타가나시 마을의 철도역 경비를 위해 배치되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그리스 대대가 무려 100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전선에 걸쳐 흩어진 셈입니다. 3월 17일에는 수송 차량 제4소대가 세바스토폴에 상륙해 제2연대 예속에 들어갔습니다.

요순(Yusun) 전투

그동안 크림반도 '목 부분'의 요충지에서는 중대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3월 22일, 아홉 개의 볼셰비키 연대가 페레코프의 얕은 물길을 통해 지협을 방어하던 약 700명의 백군 후방으로 침투한 것입니다.

지휘권을 넘겨받은 프랑스 트루송(Trousson) 대령은 제1중대에게 즉시 러시아군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제1중대는 3월 23일 요순에 도착해 러시아군과 합류했습니다. 그리스군이 공격을 개시하자 그 기세에 이끌린 러시아군까지 함께 진격하며 볼셰비키 선봉대를 밀어냈습니다.

그리스 중대는 방어진형의 중앙에, 좌우 측면에는 러시아 부대가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볼셰비키군이 진형 좌측의 러시아군을 격파해 후퇴시켰고, 그리스군 측면은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팔라스카스 중위는 후퇴를 명령했지만, 그 자신은 전사했습니다. 그럼에도 중대는 모든 장비를 지키며 질서 있게 후퇴했습니다. 손실은 컸습니다(12명 전사, 24명 부상). 한편 제2중대 역시 페레코프 방면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곳에서 강력한 볼셰비키 부대와 조우했습니다. 제2중대는 전투하며 후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대 본대와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철수와 세바스토폴 방어전

급변하는 전황 속에 볼셰비키 부대가 지역을 집어삼키기 시작하자, 심페로폴 철수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리스군은 질서 있게 철수했습니다. 고립되었던 제2중대도 해군 함선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4월 2일부터 볼셰비키군은 세바스토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사실상 도시 방어만을 담당하게 된 제2연대는 시외의 다수의 적뿐 아니라, 시내 남쪽에서 그리스군을 공격하는 내부의 적까지 상대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군은 프랑스 해군 수병들의 발포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응사해 프랑스인 3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프랑스 행정 당국은 도시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제2연대는 완벽한 질서 속에 철수했으며, 심지어 영장이나 피해와 관련된 민간인들에게 보상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리고리아디스 중령의 이러한 정치적 배려에 깊은 인상을 받은 볼셰비키 측은 그리스군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크림 작전 기간 동안 제2보병연대의 손실은 전사 19명, 부상 41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