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오스만) 통치 기간 그리스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오늘날 그리스에서는 이 질문에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하나는 실제 기록과 자료에 근거한 답이며, 다른 하나는 '이슬람법'이라는 이론적 틀 위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는 소위 '수정주의적' 관점이다.
신자와 불신자: 이슬람법이 그린 세계
이슬람에 따르면 세계는 '신자'의 세계와 '불신자'의 세계로 나뉜다. '신자'의 의무는 '불신자'를 알라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성전(聖戰), 즉 지하드도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한다. '이교도'와의 평화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오직 제한된 기간에만 허용되었다.
'성경의 백성'(유태인과 기독교인)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인두세(jizya), 즉 머리를 어깨 위에 얹고 있기 위해 내는 세금을 부담해야 했고, 토지와 그 수확물에 대한 공납(kharaj)도 내야 했다. 토지는 알라와 '예언자', 나아가 '신실한' 터키인의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
이론상으로는, 비무슬림 신민인 라야(raia)들이 세금을 내는 한 터키 측은 그들의 개인적 자유와 생명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이 체계 전체는 사실 완전히 이론적인 것이었다. 라야들은 무슬림 앞에서 당당하게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도시 변두리에 살아야 했으며, 앞머리를 밀고 푸른 두건을 쓸 의무가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탈 수 없었고, 물론 무기를 소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터키인들은 기독교 여성들을 '임대'해 법적으로 자녀를 낳은 뒤 내쫓을 수도 있었다. 또한 마음만 들면 이유 없이 사람과 재산을 함부로 빼앗을 수 있었다. 설령 기독교인이 '이슬람 법정'에 호소하더라도 '신자'에게 대항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종교의 자유'? — 이슬람화의 실체
게다가 무슬림 법 자체가 명시한 내용과 달리, 라야들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그들의 예배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불경한 행위를 허용할 수는 없으므로, 단지 막지 않을 뿐이다"라고 '성법' 해석자는 말했다.
대다수 교회가 모스크로 바뀌었는데 어떤 종교의 자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새 교회를 짓는 것은 물론, 기존 교회의 수리조차 금지되었는데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종소리를 울리는 것마저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성법'이 이론상 늘 금지했다는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은 없었다는 말인가? 14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참혹한 파이도마조마(devshirme, 기독교 아동 강제 징집)의 공포에 더해, 라야들에 대한 질식할 듯한 압박과 박해는 대규모 이슬람 개종으로 이어졌다. 특히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그리스인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 더욱 그러했다.
그리스인들은 폭력이든 경제적 압박이든, 결국 '터키 쪽으로 돌아서야' 했다.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모함을 당해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죽음을 택해야 했다. 용감한 이들은 새로운 순교자가 되어 죽음을 받아들였다. 다수의 덜 용감한 이들은 굴복했고, 또 많은 이들은 자녀를 어린이 강제 징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한 일부 지역에서는 터키인들이 그리스어 사용마저 금지했다. 셀림 1세는 이집트를 정복한 뒤 그곳 그리스인들의 혀를 자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일들은 주로 터키 통치 초기 몇 세기에 집중되어 일어났다. 어쨌든 '튀르크 통치'라는 단일 체제보다는 '여러 튀르크 통치들'로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리스인들의 생계가 지방의 튀르크 지배자들의 기분 좌우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헬레니즘(그리스 세계)은 극적인 인구 유출, 즉 출혈을 겪었다. '터키로 돌아선' 사람들은 조국과 정교회를 위해 영원히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언과 전설: 희망에 대한 갈증
이 모든 현실은 전설과 희망, 그리고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1618년 이미 미라의 마테오스(Mattheos Myraion)가 정확히 간파했듯이, "금발의 민족이 우리를 살려주기를, 모스코프에서 와서 우리를 해방해 주기를 바라고, 신탁과 거짓 예언에 희망을 걸며, 우리는 신화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에는 '슬픈 왕'의 전설이 있었다. 이 전설에 따르면 터키인들은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기둥까지 도시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면 주님의 천사가 '참회하는 왕'에게 단검을 건네고, 왕은 터키인들을 '붉은 사과나무'까지 몰아붙인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물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리석 왕(Marbled King)'의 전설은 대대로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훗날에는 '아가텐겔로스(Agathangelos)'와 같은 거짓 예언들이 힘을 얻었고, 오늘날에도 TV를 비롯한 곳곳에서 교묘하게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