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잊혀진 헬레니즘 왕국, 콤마게네와 그 강력한 군대

잊혀진 헬레니즘 왕국, 콤마게네와 그 강력한 군대

콤마게네 왕국은 오늘날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 지대에 위치했던 헬레니즘 국가로, 기원전 163~162년경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분리 독립한 영토였습니다. 당시 이 지역의 총독(사트라프)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쇠퇴기를 틈타 자신만의 독립 국가를 세웠습니다.

콤마게네 왕국의 역사

미트리다테스 1세의 후계자 칼리니코스는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의 공주 라오디케와 결혼하며 왕조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들의 아들인 콤마게네의 안티오코스 1세는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에 맞서 로마의 동맹으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기원전 38년에는 그의 아들 미트리다테스 2세가 뒤를 이었고, 이어서 미트리다테스 3세가 즉위했습니다. 그 후 안티오코스 3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가 사망한 기원후 17년 로마 제국이 이 왕국을 정복하고 직할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원후 38년, 황제 칼리굴라는 콤마게네 왕국의 재건을 명령했고, 안티오코스 4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왕국은 기원후 72년까지 독립을 유지했지만, 로마군과의 승산 없는 전투 끝에 마침내 로마 제국에 다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제6철갑군단(Legio VI Ferrata)과 맞선 이 전투에서는 안티오코스 4세의 두 아들인 에피파네스와 칼리니코스가 군대를 직접 지휘했습니다.

콤마게네 왕국의 군대

콤마게네 왕국의 군대는 셀레우코스 군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강한 지역적 특색이 가미된 형태였습니다. 보병은 그리스식 사리사 창병(사리사포로이), 튜레오스 방패병(튜레오포로이), 그리고 트라키아식 펠타스트(경장 보병) 부대를 보유했습니다. 그러나 병력의 핵심을 이룬 것은 현지 출신 시리아 궁수들이었습니다.

보병의 구성과 무장

사리사 창병들은 마케도니아식 체계에 따라 연대와 계급 단위로 조직되었으며, 이러한 편제는 아마도 정규 튜레오포로이 부대에도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현지 궁수들은 일종의 민병대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사리사 창병은 표준 무장인 사리사 창, 검, 지름 60cm의 방패, 투구, 흉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튜레오포로이는 대형 방패(튜레오스), 투구, 검, 긴 창과 투창으로 무장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사슬 흉갑을 추가로 착용했는데, 이들을 '토라키테스'라고 불렀습니다.

트라키아인들도 유사한 무장을 했습니다. 다만 낫형 도검인 롬파이아와 긴 창으로 무장한 트라키아 부대가 존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시리아 궁수들은 합성궁 외에도 검 또는 마카이라(곡도)를 소지했지만, 투구나 방패는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기병의 구성과 전술

기병 역시 셀레우코스와 파르티아의 기준을 따르는 중장갑 기병(카타프락트) 부대와 다수의 시리아 경궁기병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중장갑 기병들은 물론 그들의 말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완전히 무장했습니다. 이들은 길이 3.5m에 달하는 긴 창(크시스톤)과 검으로 무장했으며, 기병들의 무릎이 서로 닿을 정도의 극도로 밀집된 대형으로 싸웠습니다. 이러한 대형은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는 '움직이는 금속의 벽'을 형성했습니다.

이 외에도 방패, 검, 투창을 지닌 무갑 경기병인 '타란티노'식 그리스 경기병과 소수의 갈리아 용병이 있었습니다. 시리아 경기병은 활과 검, 곡도 등을 휴대하고 기동성을 발휘했습니다.

로마군의 승리에 기여하다

콤마게네 군대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로마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안티오코스 4세 국왕은 직접 사리사 창병 팔랑크스와 하마한 중장갑 기병들의 선두에 서서 전장에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잊혀진 헬레니즘 왕국, 콤마게네와 그 강력한 군대

헤라클레스와 함께 묘사된 콤마게네의 안티오코스 1세 부조.

잊혀진 헬레니즘 왕국, 콤마게네와 그 강력한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