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 대왕은 급성 괴사성 췌장염으로 사망했다! 이것은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AUTH) 의과대학 외과·혈관외과 명예교수 토마스 게라시미디스와 6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1995년부터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그리스의 위대한 장군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 원인을 조사해 왔으며, 다른 여러 학설들을 하나씩 반박해 왔다. 교수에 따르면 급성 괴사성 췌장염은 담석에 무거운 만찬과 대량의 와인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라시미디스 교수와 연구팀은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한 모든 문헌, 즉 아리아노스, 프톨레마이오스, 플루타르코스, 쿠르티우스 등 고전 기록은 물론 최신 연구 자료까지 샅샅이 뒤져 병력을 재구성했다.
"오랜 연구 끝에 사인에 도달했고, 알렉산더 대왕이 보인 증상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환자의 증상을 기록하는 모든 의사가 그렇듯이, 바로 근거 중심 의학입니다"라고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말하며, 오늘날에도 급성 괴사성 췌장염 환자의 30%가 사망한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증상 기록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증상의 발병은 풍성한 식사와 와인 이후 심한 복통으로 시작되었고, 발열과 함께 14일 동안 하루하루 치명적으로 악화되었다." 다만 그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증적 발견은 아직 남아 있다"고 언급하며, 다음 세 가지가 확인된다면 완벽한 입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
- 미라화된 시신
- 법의학 검사 및 부검 기록
명예교수의 연구는 병이 지속된 14일 각각의 날까지 극도로 상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첫째 날, 알렉산더 대왕은 복부와 우측 늑골하부의 극심한 통증과 고열을 겪었고, 의사들이 구토를 유도했습니다. 이어서 해열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찬 목욕이 뒤따랐습니다." 그는 연구를 위해 플루타르코스의 『알렉산더』(V. 파파도풀로스 번역), 『파이데이아』(테살로니키, 2003), G. 키토풀로스의 저서(1986, 알틴치스 출판사), I. 카르가코스의 『알렉산더 대왕, 인간적 현상』 등 수십 권의 고전 번역서와 연구서를 분석했다.
둘째 날, 알렉산더 대왕은 탈진과 오한을 느꼈고 산통이 재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친구 헤파이스티온을 대신한 메디오스의 궁정으로 향해, 또다시 성대한 만찬과 술자리에 참여해 만취 상태에 이르렀다. 셋째 날에는 고열이 지속되며 발한과 오한이 나타났고, 심한 호흡곤란과 탈진 증세를 보였다.
이후 며칠간 건강 상태는 고열, 황달, 의식 혼탁, 섬망으로 급격히 악화되었고, 마침내 기원전 323년 6월 13일(마케도니아력으로는 다이시오스 달), 알렉산더 대왕은 "심한 괴저와 함께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강조한다.
기존 사인설과 AUTH 연구팀의 반박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환자 알렉산더 대왕의 증상을 근거로,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사인설을 하나씩 배제했다.
말라리아 사인설
"주요 증상이 발열이긴 했지만, 말라리아와 관련된 유형의 발열은 아니었습니다. 삼일열이나 사일열을 시사할 수 있는 재발성 발열의 간격이 전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말라리아는 보통 이런 방식으로, 또 이렇게 빠르게 사망을 초래하지 않습니다"라고 연구는 밝히고 있다.
폐렴 사인설
"증상이 폐렴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폐렴은 드물게 복통을 일으키며, 주요 증상은 발열입니다. 유프라테스강에 들어갔던 알렉산더 대왕은 이미 발열 상태였으므로, 차가운 물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라고 교수는 주장한다.
장티푸스와 서나일 바이러스
장티푸스 가능성도 배제되었다. 당시 유행병이 없었고, 복통은 반드시 설사에 선행해야 하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설사 증상이 없었다. 서나일 바이러스 역시 배제되었는데, 이 바이러스는 뇌염을 일으킬 뿐 복통과 섬망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랭-바레 증후군
"최근에는 길랭-바레 증후군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질환은 호흡근 마비로 인한 청색증을 일으켰을 것이고, 의사들이 눈으로 확인했을 것입니다"라고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스푸트니크에 밝혔다.
연구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알렉산더가 길랭-바레 증후군을 앓았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의 주요 증상은 발열과 복통이었는데, 이는 길랭-바레 증후군에 수반되는 증상이 아닙니다. 더욱이 알렉산더가 인지 기능을 유지한 채 점진적 마비를 보였다는 견해는 사실일 수 없는데, 모든 사료가 점진적인 의식 상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의적 독살설
알렉산더 대왕의 독살설은 가장 유력한 이론이었다. 왕실 공식 기록에서 풍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게라시미디스 교수가 언급했듯이 이 기록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아리아노스는 독살에 관한 세 가지 버전을 기록했는데, 그중 하나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조카 칼리스테네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안티파트로스를 통해 제자를 해치려 독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아리아노스는 독살 이론들을 언급했지만, 자신의 기록에서 이를 믿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현명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제자를 독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시에는 화학 독물이 없었고 식물성·동물성 독만 존재했습니다. 의과대학 독성학과 니콜라오스 라이코스 교수와 함께 조사한 결과, 당시 이런 종류의 독은 114종에 달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미나리, 스트리크닌, 시안화수소 등 어느 것이든 마셨다면 몇 시간 안에 소크라테스처럼 죽었을 것입니다. 14일이나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우울증 사인설
게라시미디스 교수는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슬픔이 원인이라는 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극심한 슬픔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지만,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우울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병 초기에도 그는 장군들과 다음 원정 계획을 논의하며 일했습니다. 그것이 좋은 증거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편 이 연구는 여러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으며, 최근에는 테살로니키에서 개최된 제16회 전그리스 수술 감염 학술대회와 제8회 전그리스 외상 및 응급외과 학술대회에서도 소개되었다.
출처: 스푸트니크(SPUT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