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모든 언어 중에서 그리스어가 우월하다'…니케아 제국의 학자 황제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

 모든 언어 중에서 그리스어가 우월하다 …니케아 제국의 학자 황제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

중세 헬레니즘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Theodoros II Laskaris)는 중세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히 빛나는 인물이었다. 1222년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태어난 그는 니케아 제국을 건국한 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의 손자이자, 요안니스 바타치스와 이리네 라스카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는 당대 기준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 저명한 학자였던 니키포로스 블렘미디스와 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티스가 바로 그의 스승이었다.

대외 정책 — 불가리아 격파와 균형 외교

즉위하자 그는 불가리아 원정에 나섰고, 적들을 완벽하게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에피루스 전제공국과의 갈등을 종식시켰는데, 자신의 딸을 전제공 미하일 2세 콤네노스의 아들에게 시집보내 혼인 동맹으로 화해를 이끌었다.

동방에서는 몽골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튀르크(셀주크) 세력에 대한 방파제 역할로 활용하는 외교적 감각도 보여주었다.

교회 통합 협상과 좌절

콘스탄티노플 탈환이라는 대업을 앞두고 그는 교황과 교회 통합(Union of Churches)을 놓고 협상하며 서방의 지원, 아니 최소한의 중립이라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자국민의 강한 반서방 정서를 잘 알던 그는 끝내 협상을 파기하고 말았다.

약자의 보호자였던 황제

내정에서 그는 소위 '유력자(대귀족)'들의 폭정에 맞서 가난하고 약한 백성의 편에 섰다. 특히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요직에 발탁했는데, 무잘론 형제의 등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강 악화와 감정의 격랑

하지만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고, 병든 몸은 극심한 감정 기복을 낳았다. 그 결과 그는 종종 불필요할 만큼 주변 인물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스승 아크로폴리티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명령해 거의 죽일 뻔했고, 장군 미하일 팔라이올로고스에게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벼슬을 내려놓고 셀주크령으로 피신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36세의 요절과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의 개막

1258년, 테오도로스는 비티니아의 님페움에서 겨우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뒤에는 7살배기 후계자 요안니스만 남았고, 게오르기오스 무잘론이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미하일 팔라이올로고스를 영수로 삼은 군대는 게오르기오스와 니키포로스 무잘론 형제를 살해하고, 어린 후계자를 눈멀게 한 뒤 미하일 팔라이올로고스를 제위에 올렸다.

정통 신앙과 그리스어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

테오도로스는 특히 정교회 신앙에 깊이 헌신했던 인물이었다. 성모 마리아를 위한 대축원경(Great Supplication Canon)의 창작자로 여겨질 정도다. 또한 그는 '로마인'이라는 칭호 대신 '그리스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남긴 신학 저술, 특히 철학 저작들은 그리스어와 그리스 철학에 바치는 찬가와 같다.

실제로 그는 라틴인들과 대화할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스인의 모든 철학과 지식은 하나의 보물처럼 빛난다… 그런데 당신, 이탈리아인이여, 그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다. “모든 언어 가운데 그리스어가 으뜸이다.” 이 선언은 먼 과거에도 이미 그리스 민족 정체성이 존재했음을 오늘날까지 의심하는 이들에게 내린 단호한 대답이었다.

 모든 언어 중에서 그리스어가 우월하다 …니케아 제국의 학자 황제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