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르모필레, 다시 한 번 전장이 되다
테르모필레는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300인의 최후로 유명한 고전 전투의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격전지가 되었다. 서기 996년, 차르 사무일이 이끄는 불가리아군은 황제 바실리오스 2세 '불가로크토노스'가 아랍 세력과의 전쟁에 발이 묶인 틈을 타고 테살로니키를 포위했다.
그러나 방비가 견고한 테살로니키를 함락하지 못하자 불가리아군은 방향을 돌려 남진했다. 그들은 라리사를 약탈해 폐허로 만들었고, 말 그대로 코린토스 인근까지 약탈 행렬을 이어갔다.
니케포로스 우라노스 장군의 끈질긴 추격
발칸 반도를 집어삼키는 듯한 불가리아의 침공에 직면한 황제는 니케포로스 우라노스 장군에게 그리스 방어를 맡기고 병력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리아군이 노획한 전리품과 납치한 수천 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끌고 북상하기 시작하자, 우라노스는 신중하게 그 뒤를 좇으며 가능할 때마다 후위 부대를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이 고양이와 쥐 같은 추격전은 서기 997년 여름, 두 군대가 테르모필레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곳에서 우라노스는 군대와 함께 강을 건너 불가리아군 앞에 나섰다. 전리품과 포로 때문에 행군 속도가 늦어져 있던 불가리아군은 강 남쪽 기슭에 진영을 치고 비잔티움군을 마주 보았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치열한 대치
집중 호우로 강물이 불어나 도하가 불가능해지자, 불가리아군은 자신들이 장악한 강안을 따라 소규모 경비대를 배치했다. 양측은 며칠 동안 마주 본 채 움직일 수 없었고, 이는 '비잔티움군이 강을 건널 수 없다'고 믿은 불가리아군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비잔티움군의 정찰 경기병들이 군대가 필사적으로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다. 즉시 니케포로스 우라노스가 현장으로 달려가 통과 가능성을 확인한 뒤, 해가 지는 즉시 도하 준비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와 함께 시작된 새벽의 학살
계획은 정확히 실행되었다. 비잔티움군은 철저한 질서 속에 밤사이 강을 건너 불가리아 진영에 접근했지만, 어둠과 혼란 속에서 불가리아군에게 잡혀 있는 그리스인 포로들을 해치울까 염려해 새벽을 기다리며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이 트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키리에 엘레이손)'를 외치며 비잔티움군이 일제히 진영으로 돌진했다.
기습을 당한 불가리아군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고, 버틸 수 있던 이들은 전리품과 포로를 모두 버리고 도주했다. 항복을 거부하고 맞선 약 1,000명은 참살당했고, 12,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로들의 구출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을 구해준 비잔티움 병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 멸망의 시작
차르 사무일과 그 뒤를 따르던 아들 가브릴 라도미르는 목숨을 건졌지만, 패배의 충격은 컸다. 이 전투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 몰락의 서막이 되었다. 테르모필레라는 상징적인 땅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비잔티움 제국이 발칸 반도의 패권을 되찾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