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3년 6월 30일, 오늘날로부터 수백 년 전의 바로 이날, 역사학자들이 널리 인정하는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은 비잔티움 제국을 구원했을 뿐 아니라, 북방에서 밀려오던 위협을 오랫동안 분쇄했습니다.
트라키아를 유린한 불가리아의 침공
763년 늦은 봄, 불가리아의 군주 텔레츠(Telets)는 대군을 이끌고 비잔티움 제국의 트라키아 영토를 침공해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흑해 연안의 번영을 노린 이 기습은 제국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함대와 함께 움직인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
소식을 접한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는 즉각 제국 군단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함대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선박에 실어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 침략자들을 맞서기 위해 진격했습니다. 해상 수송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시간을 벌며 신속히 전선에 도달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가능하다면 적의 배후에 나타나 포위를 시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길을 지켰다가 평원으로 내려온 텔레츠
그러나 불가리아 측 역시 황제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키알로스(Anchialos, 오늘날 불가리아 포모리에 인근) 시 북서쪽 산악 지대로 후퇴해 모든 산길과 협로를 통제했습니다. 문제는 텔레츠 자신의 허영심이었습니다. 그는 요새화된 유리한 고지를 스스로 내려놓고 평원에서 콘스탄티노스와 정면 대결을 감행했으며, 여기에 속민인 슬라브족 보병 부대까지 합류해 전력을 보강한 상태였습니다.
10시간의 혈전, 그리고 궤멸
안키알로스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특히 길고 잔혹했습니다. 오전 10시경 시작된 싸움은 거의 10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비잔티움군과 불가리아군은 필사적으로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해 질 무렵 승부는 갈렸습니다. 텔레츠의 군대는 완전히 분쇄되었고, 텔레츠 본인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탈출했지만 그의 고위 관료 대부분은 전사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최초의 '불가리아인 살해자'
대승을 거둔 콘스탄티노스 5세는 비잔티움 역사상 최초로 '불가리아인 살해자'를 뜻하는 불가로크토노스(Bulgaroktonos)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명칭은 훗날 바실리오스 2세 같은 위대한 황제에게도 이어졌지만,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이 날의 승자였습니다. 참패 직후 텔레츠는 자국 귀족들에게 폐위되고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지며, 이 승리로 제국은 오랫동안 북방 국경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