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0년, '정복자' 메메드 2세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동지중해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는 듯했습니다. 당시 성 요한 기사단은 도데카니사 제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는데, 기사단은 이곳을 정복해 작은 해상 국가를 세우고 무슬림과의 전쟁을 끊임없이 이어왔습니다. 메메드는 1454년과 1467년 두 차례에 걸쳐 기사단을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베네치아를 굴복시킨 뒤, 메메드는 더 이상 로도스라는 '말벌집'을 방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로도스 앞바다에 나타난 오스만 함대
1480년 5월 23일, 거대한 터키 함대가 로도스 항구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원정군을 이끈 지휘관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리스인' 출신 대재상 메시흐 파샤(팔라이올로고스)였습니다. 반면 기사단 총장 피에르 다뷔송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약 7,000명에 불과했으며, 그중 5,000명은 그리스인이었습니다. 터키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사료마다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7만~1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운명의 7월 27일
격렬한 충돌이 이어진 끝에, 터키군은 7월 27일 — 성 판텔레이몬 축일 — 로도스에 대한 최대 규모의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성벽을 향한 집중 포격에 이어, 그들은 승리 후 포로로 잡을 수비병들을 꿰어 처형하기 위한 8,000개의 말뚝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메시흐은 부하들에게 도시 약탈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고, 터키군은 "알라"를 외치며 돌진했습니다. 공격 지점은 이전 공격과 포격으로 무너진 성벽의 돌파구였습니다.
메시흐은 전리품을 노리고 다투는 방대한 무리, 즉 규율 없는 비정규군 바시보주크를 최전선에 내몰았습니다. 그 뒤에는 장교들이 검을 들고 대기하며, 겁에 질려 후퇴하려는 병사를 즉시 베어버리겠다며 위협했습니다. 두 번째 열에는 정예 예니체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포격이 멈추자마자 터키군은 무시무시한 함성을 지르며 공격에 나섰고, 이 끔찍한 인해(人海) 앞에서 수비군은 조금씩 밀려났습니다. 결국 터키군은 돌파구를 통해 성내로 진입했고, '예언자'의 깃발이 성벽 위에 게양되었습니다.
16명의 기사, 운명에 맞서다
총장 다뷔송은 이 순간의 무게를 절감했습니다. 다리에 화살을 맞은 상태였지만, 노련한 전사는 모든 것이 걸린 운명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즉시 12명의 기사와 3명의 기수를 이끌고 터키군의 인산인해에 홀로 맞섰습니다. 기수들이 든 깃발은 하나는 성모 마리아의 성상, 두 번째는 세례자 성 요한의 성상, 세 번째는 성 요한의 8각 십자가가 새겨진 기사단의 군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고작 16명이 대군과 맞서 적을 분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터키군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다뷔송은 이 전투에서 네 곳에 새로운 부상을 입었고, 한 예니체리의 창에 가슴이 꿰뚫려 폐까지 닿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부하들은 그를 급히 후방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로도스가 터키의 손아귀에 넘어갈 시간이 된 듯 보였습니다.
하늘에서 나타난 성모와 천사?
그런데 기독교도들에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던 바로 그 순간, 터키군이 멈춰 섰습니다! 진영 곳곳에 공포가 번졌고, 터키 병사들은 깃발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그리고 기독교도의 천사들이 자신들과 싸우고 있다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터키군은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수비군 역시 하늘에서 성십자가가 빛나고, 그 양옆에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이 서 있으며, 그 뒤로 성인들과 천사들이 따르는 환영을 목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이것은 기적이었을까요, 아니면 공격자와 수비자 모두에게 일어난 집단적 착각이었을까요? 양측 모두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무언가를 시사하는 듯합니다.
기적이든, 단순한 터키군의 공포심이든, 어쨌든 그것이 로도스를 구원했습니다. 이슬람의 대군은 우왕좌왕 도주했고, 기사단은 이들을 끝까지 추격해 적진까지 몰아붙이며 학살했습니다. 수천 명의 터키 병사가 그날 — 로도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인, 성 판텔레이몬의 축일에 — 전장에 쓰러졌습니다. 며칠 뒤, 터키군은 부끄러움을 삼키며 섬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