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국민이 나폴레옹에게 자발적으로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나폴레옹은 국민의 선택으로 다시 집권한 것이 아니라, 무력과 당시의 정치적 혼란을 이용해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엘바 섬 망명과 극적인 귀환
1814년,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 등 일련의 패배로 인해 연합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퇴위했으며,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15년 3월, 소수의 병사들과 함께 엘바 섬을 탈출해 프랑스 본토에 상륙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나폴레옹이 파리로 진군하는 동안 그를 저지하기 위해 파견된 왕정복고 정부의 군대마저 그에게 합류했다는 사실입니다. 부르봉 왕정에 대한 불만이 컸던 당시 프랑스 군대와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국왕 루이 18세는 수도를 떠나 도피했고, 나폴레옹은 큰 저항 없이 파리에 입성해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짧은 복귀, 백일천하(百日天下)
이렇게 재집권한 시기를 역사에서는 '백일천하'라고 부릅니다. 나폴레옹은 약 100일 동안 다시 프랑스를 통치했지만, 유럽 열강들은 그의 복귀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워털루 전투와 최종적인 몰락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연합군과 블뤼허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습니다. 이 패배로 그는 다시 퇴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영국에 항복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를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 화산섬,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추방시켰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 감시 장소였던 이곳에서 나폴레옹은 1821년 위암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결론
요컨대 나폴레옹의 '두 번째 기회'는 국민이 준 선물이라기보다,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그의 카리스마와 군대의 충성심이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워털루의 패배와 함께 단 100일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