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의 그리스 침공, 복수와 팽창이 교차한 순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 침공을 결정한 직접적인 계기는 아테네가 이오니아 반란에 개입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원전 499년경 소아시아 해안 지역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의 지배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는데, 역사에서 이를 '이오니아 반란'이라고 부릅니다.
아테네의 개입이 불러온 결과
반란 초기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은 혼자 힘으로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본토 그리스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에 응답한 것은 아테네였고, 에레트리아도 함께 소규모 함대를 파견했습니다. 아테네 군은 반군과 함께 페르시아령 리디아의 중심 도시인 사르디스까지 진격해 도시를 점령하고 불태웠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가 불타는 모습은 다리우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다리우스는 매 식사마다 시종에게 "아테네인을 기억하라"고 세 번 외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그는 아테네에 대한 징벌을 각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침공의 배경에는 더 큰 야심도 있었다
물론 복수심만이 동기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에게해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고, 서방으로의 영향력 확대는 오랜 국가적 목표였습니다. 아테네의 개입은 단지 침공의 명분이자 방아쇠 역할을 한 것입니다.
결국 기원전 490년 다리우스는 대군을 그리스로 파견했고, 원정대는 에레트리아를 파괴한 뒤 아티카의 마라톤 평야에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테네 군은 압도적으로 열세인 병력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군을 격파하는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거두며 첫 번째 페르시아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요컨대 다리우스의 그리스 침공은 아테네의 이오니아 반란 개입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목 아래, 제국의 서방 팽창이라는 더 큰 전략적 의도가 함께 담긴 결정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