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종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다: 독일 잘츠부르크 개신교도들의 조지아 이주 이야기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잘츠부르크 개신교도들

18세기 초,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이주민들 중 가장 감동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잘츠부르크(Salzburg) 개신교도들의 이주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머나먼 북아메리카의 조지아로 떠나야만 했을까요?

1731년, 다시 시작된 박해

1731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지역의 개신교도들은 새로운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지도급 인사들이 감옥에 갇혔고,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강제로 분리되어 로마 가톨릭 가정에 보내지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불의의 소식은 1714년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하노버 왕가 출신의 조지 2세 국왕의 귀에까지 닿았습니다. 국왕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직접 중재를 요청했고, 황제는 피해 구제를 약속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영국을 거쳐 신대륙으로

조지 2세 국왕의 허가를 받아 약 400명의 잘츠부르크 주민들이 배에 올라 잉글랜드로 향했고, 그곳에서 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북아메리카의 조지아 식민지였지만, 일부는 현지에서 노동자로 남았고 또 일부는 독일로 되돌아갔습니다.

조지아 에베네저에 뿌리내리다

1734년 3월, 첫 배에 탑승한 120명의 잘츠부르크 주민들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Charleston) 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1월 20일, 40개 가족이 조지아의 에베네저(Ebenezer)에 정착지를 마련했습니다.

이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조지아에 도착했기 때문에, 식민지 당국은 몇 년 동안 지대(토지세) 징수를 유예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주민들은 매우 근면하고 활동적이었으며, 처음부터 큰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조지아 최대 공동체로 성장

이후에도 수많은 잘츠부르크 개신교도들이 영국을 경유해 조지아로 계속 이주해 왔습니다. 1743년 말에는 약 800명에 달하는 집단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조지아에서 가장 강력한 공동체로서, 영국인 이주민의 수마저 능가하는 규모였습니다.

잘츠부르크 개신교도들의 이주는 종교 박해라는 시련 끝에 신대륙에서 자유와 번영을 찾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오늘날 미국 조지아주의 초기 정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챕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