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는 완제 회의(Wannsee-Konferenz)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의는 나치 치안국(Sicherheitsdienst, SD)의 수장이자 홀로코스트의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가 기획하고 주재했습니다.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교외에서 열린 비밀 회의
완제 회의는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근교 완제 호숫가의 별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하이드리히는 국가보안본부(RSHA) 국장 자격으로 정부 각료와 SS, 관료층의 고위 인사 15명을 소집했으며, 이 자리에서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이른바 '최종 해결책(Endlösung)'의 실행 방침을 조율했습니다.
히틀러의 역할은 '간접적 승인'
그렇다면 히틀러는 어디에 있었고,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히틀러는 회의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의 존재는 회의 전 과정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의사결정 과정에서 히틀러의 역할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인 승인과 방임에 가까웠습니다.
즉, 히틀러는 대원칙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나치 관료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점 더 급진적이고 집단학살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상층부의 모호하지만 강력한 의지가 하급 관료들에게 '창조적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조직적인 대량 학살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회의 이후의 전개
흥미롭게도 하이드리히는 이 회의 이후 같은 해 6월 체코 프라하에서 영국 정보기관이 지원한 암살 작전(안트로포이드 작전)으로 사망했습니다. 반면 회의록을 작성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후 도주했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예루살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완제 회의는 히틀러 한 사람의 명령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치 체제 전체가 관료적으로 협력하여 벌인 범죄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