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영국)가 15~16세기 동안 신대륙 식민지 건설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크게 뒤처졌던 데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진출이 늦어진 주요 원인
- 해양 강국으로서의 취약한 기반 — 당시 잉글랜드 해군은 규모가 작고 전력도 빈약했으며,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이 축분히 쌓여 있지 않았습니다.
- 유럽 내 끊임없는 전쟁 —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열강들과 벌인 일련의 전쟁이 국력을 크게 소진시켰고, 식민지 개척에 집중할 여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 종교적 갈등 요인 — 잉글랜드가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반면, 아메리카 대륙은 주로 가톨릭 세력의 영향권에 있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부분을 지배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충돌을 감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약한 해외 탐사 전통 — 잉글랜드인들은 식민지 건설보다 무역에 더 큰 관심을 두었고, 신대륙 탐사의 주도권은 다른 유럽 열강에게 맡겨두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16세기 말, 상황이 바뀐 계기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잉글랜드의 식민지 개척 의지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 종교개혁의 영향 — 종교개혁으로 인해 잉글랜드 내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잉글랜드 프로테스탄트들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세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 격침 — 무적함대(Armada)를 격파하면서 잉글랜드 해군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맞서 아메리카 지배권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상업과 무역의 성장 — 급성장하는 상공업은 새로운 시장과 자원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고, 잉글랜드는 아메리카를 그 해결책으로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 건설의 시작과 그 결과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잉글랜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아메리카에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식민지로는 제임스타운(1607년), 플리머스(1620년), 매사추세츠베이(1630년)가 있으며, 이들 식민지는 훗날 미합중국(미국)의 모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