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노르망디 전투(D-Day)는 왜 시작되었을까?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 흔히 노르망디 전투 또는 D-Day로 불리는 이 역사적 사건은 독일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의 해방, 나아가 서유럽 해방의 막을 올렸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승리의 토대를 마련한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노르망디 전투는 왜 시작되었을까?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된 이후 서유럽 대륙은 독일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동부 전선에서 소련이 독일군에게 큰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연합군은 서유럽에 제2전선을 열어 독일군의 병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유럽 대륙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상륙작전을 추진하게 됩니다.

아이젠하워가 설계한 대작전

이 캠페인은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장이 총괄 계획했습니다. 연합군은 유타(Utah), 오마하(Omaha), 골드(Gold), 주노(Juno), 소드(Sword)라는 암호명이 붙은 노르망디의 다섯 해안에 공중과 해상에서 동시에 상륙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병력과 물자

첫 상륙 이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동안, 총 약 300만 명의 인원이 6,900여 척의 상륙정과 864척의 군함을 타고 영국해협을 건넜습니다. 6월 6일 단 하루에만 약 871,749명의 병력(미군 573,017명, 영국·캐나다군 214,877명, 기타 연합국 군인 83,856명)이 프랑스 땅에 내려섰습니다.

규모를 비교해 보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그로부터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진행된 북아프리카의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에서는 지중해 연안 전체를 통틀어 영국 및 영연방군 약 39만 명, 미군 약 57만 5,000명이 상륙하는 데 그쳤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얼마나 초대형 작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