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었다. 프랑스는 폴란드와 맺은 동맹 조약에 따라 영국과 함께 이틀 뒤인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후 1940년 6월 22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독일과 공식적인 교전 상태를 유지했다.
프랑스 전투와 굴욕적인 항복
1940년 5월 독일군이 프랑스 본토를 기습 침공하면서 결정적인 국면인 '프랑스 전투(Battle of France)'가 시작되었다. 전격전(블리츠크리그) 전술로 무장한 독일군은 프랑스 방어선을 순식간에 돌파했고, 프랑스군은 크게 패배했다. 프랑스 정부는 수도를 지키지 못한 채 후방으로 후퇴해야 했으며, 결국 1940년 6월 22일 체결된 휴전 협정에 따라 프랑스는 북부와 서부의 독일 점령 지역, 그리고 남부의 '자유 지역'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겪었다.
자유 프랑스군과 샤를 드골
조국이 항복한 뒤에도 저항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장군은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한 프랑스인들을 규합해 자유 프랑스군(Free French Forces)을 조직했다. 이 부대는 연합군 편에서 계속 싸우며 프랑스의 명분을 지켰고, 드골은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1944년 프랑스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싸운 프랑스 레지스탕스
프랑스 레지스탕스(French Resistance)는 독일 점령에 맞서 몰래 조직된 저항 운동이었다. 점령 지역과 자유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 철도와 통신망 등 독일군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작전
- 독일군 부대에 대한 매복 공격과 게릴라전
- 연합군에 제공할 군사 정보 수집 및 전달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프랑스 해방
프랑스 해방의 물꼬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D데이)으로 열렸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변에 대규모로 상륙해 내륙으로 진격했으며,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독일군의 보급선을 파괴하고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적극 호응했다.
파리 해방, 유럽 전선의 전환점
1944년 8월 25일, 연합군은 마침내 파리를 해방시켰다. 파리 해방은 단순한 도시 탈환이 아니라 유럽 전역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승리는 연합군이 독일군을 정면으로 격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전쟁의 끝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을 전 유럽에 전했다.
유럽 전쟁의 종결과 프랑스의 역할
유럽의 전쟁은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프랑스는 연합군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점령이라는 억압 속에서도 프랑스 국민들은 용감하게 저항했고, 레지스탕스의 은밀한 활동은 프랑스 해방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전후 프랑스의 재건과 국제적 위상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는 국제 질서 재편의 중심에 섰다. 프랑스는 국제연합(UN)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으며, 훗날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유럽 통합의 초석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