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대 미국 사회에는 프랑스에 대한 경계심과 반감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과거 독립 전쟁 당시의 동맹국이었던 프랑스가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되기까지 이른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1. 정치적 이념: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충격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화, 박애'라는 구호 아래 완전히 새로운 정치 이념을 세상에 내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 사상은 당시 미국의 비교적 보수적인 사회·정치 질서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혁명의 이념이 자국으로 번질 경우,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사회 혼란과 폭력이 그대로 재현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특히 혁명 과정에서 왕정이 무너지고 대규모 처형이 자행되는 모습을 지켜본 미국 지도층에게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2. 프랑스의 대외 정책: 유럽 전쟁의 파장
두 번째 요인은 프랑스의 공격적인 대외 정책이었습니다. 1790년대 프랑스는 일련의 군사 원정을 감행하며 여러 유럽 군주국들과 충돌했고, 이는 결국 프랑스 혁명 전쟁(1792~1802)으로 비화되어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유럽 열강들과의 전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미국이 프랑스와 영국 양측 모두와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이 거대한 분쟁은 자국의 해상 무역과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고, 어느 편도 들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반프랑스 감정과 유사전쟁
이러한 우려가 누적되면서 1790년대 미국 내 반프랑스 여론은 급속히 고조되었습니다. 그 결과 1798년부터 1800년까지 미국과 프랑스 간의 해상 무력 충돌인 유사전쟁(Quasi-War)이 벌어졌습니다.
나아가 연방 정부는 친프랑스 성향의 여론을 억제하기 위해 1798년 외국인 및 선동 방지법(Alien and Sedition Acts)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미국 헌정사에서 논란이 되는 페이지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