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3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로마는 다시 한번 격동의 시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한 인물은 바로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외종손이었던 옥타비아누스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정치적 유산과 이름을 계승했으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권력 다툼 끝에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며 로마의 유일한 실권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는 역사상 최초의 로마 황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받은 공식 칭호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는 먼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즉 '신성한 율리우스의 아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신격화된 카이사르의 적법한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존칭을 공식적으로 수여했습니다. 이는 '존엄한 자',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핵심 정리
결론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은 후 로마를 장악한 사람은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 훗날의 아우구스투스입니다. 그는 초대 로마 황제로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받아 로마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