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쟁(1967년 6월)은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와 맞붙은 세 번째 무력 충돌로, '제3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불립니다. 전쟁은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막을 올렸고, 모셰 다얀(Moshe Dayan) 국방장관의 지휘 아래 총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전차부대는 눈부신 속도로 진격했으며, 6월 10일 전투가 멈췄을 때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전역,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 동예루살렘, 그리고 시리아 골란 고원의 전략 요충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점령지'는 곧 지역 내 긴장을 폭발시키는 온상으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포위된 나라
1956년 이스라엘이 프랑스·영국과 손잡고 나세르의 이집트에 맞섰던 분쟁 이후, 아랍 진영은 텔아비브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6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군사 동맹을 체결하면서 보복은 더 이상 먼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적대 국가들에 사방이 막힌 형국에 놓였고, 소련은 아랍 국가들의 재무장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1967년 4월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골란 고원 상공에서 공중전을 벌이며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는데, 그 결과는 다마스쿠스에 불리하게 끝났고 이는 아랍 세계 전체에 분노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이집트는 1957년 이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에 주둔해 온 유엔(UN) 군대의 철수를 강행했고, 나세르는 시나이 반도를 재무장시키며 이스라엘 남부 국경에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배치하기에 이릅니다. 나아가 이집트는 23일 에일라트 항과 티란 해협을 봉쇄해 이스라엘로 향하는 석유 공급로를 차단했습니다.
7일 뒤에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어쩔 수 없이 시리아-이집트 동맹에 가담했습니다. 서안지구(중앙), 시나이(남부), 골란(북부) 등 세 개 전선에서 전쟁 가능성에 직면한 레비 에스콜 정부는 주도권을 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이집트의 봉쇄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발이 묶여 있던 미국의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지지를 확인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고, 6월 1일 전쟁 영웅 모셰 다얀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6일간의 전쟁: 하루 만에 제공권을 잡다
4일 뒤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세는 이집트 공군을 겨냥한 강력한 선제공격으로 출발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이집트 항공 전력의 약 80%가 궤멸당했고, 이후 하늘은 완전히 이스라엘의 것이 되어 이후 모든 작전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모셰 다얀(Moshe Dayan) 장군의 지휘 아래 총공세에 돌입했으며, 이츠하크 라빈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 전차부대는 신속히 가자지구를 제압했습니다.
6월 7일, 차할(Tsahal, 이스라엘군)은 샤름엘셰이크를 점령했고 다음 날 수에즈 운하 연안에 도달했습니다. 8일에는 시나이 반도 거의 전역이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이집트 부대들은 곳곳에서 압도당하며 말 그대로 휩쓸려 나갔습니다. 북쪽에서는 시리아군이 차할의 치열한 공방 끝에 골란 고원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 전선에서도 이집트의 승리를 기대했던 요르단군은 단 이틀 만에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번개 같은 승리, 그러나 무거운 대가
전쟁은 6월 10일 이스라엘-시리아 간 휴전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의 인명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이집트에서 약 2만 명, 요르단에서 6천 명, 시리아에서 5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약 700명의 전사자를 낸 이스라엘은 시나이, 가자지구, 골란 고원,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이 갈등의 여파는 깊고도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약 35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해당 지역을 떠났으며, 이스라엘의 점령은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242호에서 비난받았습니다.
나세르식 범아랍주의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고, 그 공백에서 이슬람 운동이 부상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하는 점령지를 통치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가 이 무국적 민족의 대의를 세계의 눈앞에 상징하는 인물로 떠오르게 됩니다.
6일 전쟁 관련 참고문헌
- 피에르 라주(Pierre Razoux), 『6일 전쟁, 1967년 6월 5~10일: 신화에서 현실로』, Economica, 2006
- 라파엘 델파르(Raphaël Delpard), 『6일 전쟁: 승리와 독』, Sonn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