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아라칸을 노린 연합군의 포석
1945년, 연합군은 버마에서 일본군을 서서히 압박하고 있었다. 영국 지도부는 아라칸(Arakan) 지역을 장악해 일본군이 랑군(현 양곤) 방면으로 후퇴하는 통로를 끊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적의 배후에 제3코만도여단을 상륙시키기로 결정했다.
작전 개시: XV 인도군단의 공세
1944년 12월 말, 제15(XV)인도군단이 공세에 나섰다. 군단 사령부는 캠벨 하디(Campbell Hardy) 준장이 지휘하는 제3코만도여단 — 제1, 제5, 제42, 제44코만도 — 에 핵심 역할을 맡겼다. 작계는 명확했다. 먼저 선봉인 제5코만도를 상륙시키고, 뒤이어 나머지 부대를 투입해 칸가우(Kangaw)와 주변 요충지를 장악함으로써 일본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사전포격 없이 감행된 기습 상륙
1945년 1월 12일, 제5코만도가 메이본(Maybon) 해안에 발을 디뎠다. 대원들은 모든 장비를 짊어진 채 늪지와 논을 가로질러 진격했다. 이 일대의 핵심 거점은 바로 '170고지'였다. 동시에 여단의 다른 부대들도 일본군에게 들키지 않도록 사전포격 없이 칸가우 남쪽 3km 지점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제1코만도는 제5코만도의 지원 아래 170고지 확보 임무를 맡았다. 제42코만도는 교두보를 담당했고, 제44코만도는 170고지 동쪽의 두 작은 골짜기를 장악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에서 일본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첫 번째 일본군의 반격
일본군이 처음 움직인 것은 1월 23일 밤부터 24일 새벽 사이였다. 영국군이 '피너(Pinner)'라 이름 붙인 골짜기 하나로 공격이 몰아온 것이다. 일본군 포병은 진지에 포탄을 쏟아부었으나 코만도들은 모범적인 강인함으로 버텨냈다. 1월 26일에는 정규 부대가 두 골짜기의 제44코만도를 교체했다.
1월 31일, 일본군의 총반격
영국군은 칸가우를 점령했지만 곧바로 일본군의 역공에 직면했다. 1월 31일, 일본군 제154보병연대가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170고지를 맹공했다. 특히 일본군은 정면 폭 100m에 불과한 좁은 구간, 즉 제1코만도 진지에 공격을 집중시켰고, 물결처럼 몇 번이고 돌격해 왔다.
코만도들은 3대의 셔먼 전차 지원을 받았지만, 그중 2대는 일본군 보병 자살분대의 공격으로 즉시 파괴되고 말았다. 같은 시각, 정면을 방어하던 제1코만도 제4소대는 압도적인 공세에 궁지에 몰렸다. 영국군의 반격 시도는 일본군의 집중 기관총 사격에 격퇴됐고,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한 대의 셔먼 전차가 지원한 역습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백병전 끝에 밝아온 승리
그럼에도 일본군은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제42코만도와 제5코만도가 제1코만도를 구원하러 달려왔고, 인도 대대 하나가 적의 측면을 우회 공격했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일본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밤이 되자 제5코만도 진지를 향해 최후의 돌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은 총검과 도수로 벌어진 격렬한 백병전 끝에 격퇴되었다.
이로써 일본군은 패배를 인정하고 후퇴했다. 전장에는 일본군 시신 340구가 남았고, 영국군의 피해는 전사 45명, 부상 90명이었다. 이후 아라칸에 이어진 영국군의 추가 상륙 작전으로 일본군 제28군 전 병력은 해당 지역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전투의 영웅, 조지 놀랜드 중위
이 전투의 영웅으로 추서된 이는 제1코만도 제4소대를 지휘한 조지 놀랜드(George Knowland) 중위였다. 그와 그의 부하 24명은 문자 그대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놀랜드 중위는 전사했고, 부하 14명도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는 이 전투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사후 빅토리아 십자장(VC)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