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다야 회담: 히틀러의 스페인 침공 압박과 프랑코의 완강한 저항
1940년 10월 23일,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인근 헨다야 역에서 역사적인 헨다야 회담이 열렸습니다. 참석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총통,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 라몬 세르 수네르 스페인 외무장관(프랑코의 처남),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독일 외무장관, 그리고 통역관 그로스와 토레스 남작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요구와 프랑코의 계산된 거절
히틀러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이 제공한 병력과 군수물자 지원을 빌미로, 스페인이 중립을 포기하고 추축국 편에서 참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프랑코는 추축국에 우호적이었고 독일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내전으로 피폐해진 스페인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전 조건으로 막대한 자금과 군수물자 지원, 지브롤터 반환, 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모로코, 오랑 등) 할양을 내걸었습니다.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고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급기야 히틀러는 프랑코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시 나와 함께 참전하지 않으면, 내 전차부대가 2주 만에 스페인을 점령할 수 있다."
이에 굴하지 않은 갈리시아 출신의 프랑코는 다음과 같이 맞받아쳤습니다.
"2주 만에? 당신은 스페인 도로 사정을 모르는군. 그 도로로는 2주 만에 진격할 수 없어!"
스페인을 구한 '맥아담 포장 도로'의 역설
프랑코의 호언장담은 허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도로의 절반 이상은 맥아담(Macadam) 포장 상태였습니다. 이는 여러 층의 돌을 롤러로 다져 만든 비포장 도로로,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어서 마차나 우마차 통행에는 적합했지만, 무거운 전차와 군용 트럭이 지나가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습니다.
이 도로 포장 기술은 스코틀랜드의 토목 기사 존 라우던 맥아담(John Loudon McAdam)이 1820년경 개발한 공법으로, 그의 이름을 따 '맥아담 포장'이라 불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스코틀랜드 기술자가 고안한 구식 도로 공법이 20세기 최강의 독일 기계화 부대의 발목을 잡아, 스페인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는 것을 막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존.
참고 자료: The Adventure of History, Historiasiglo20, 공포의 세월(Los años del miedo) - 후안 에슬라바 갈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