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난공불락의 싱가포르가 7일 만에 무너진 비밀, 자전거를 탄 일본군의 정글 돌파

유럽에서 지브롤터 바위가 영국 해군의 상징이었다면, 극동에서는 싱가포르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18세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영국은 지중해의 요충지와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관문인 싱가포르를 장악하며 '극동의 지브롤터'라 불리는 강력한 요새 도시를 구축해 왔습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은 말레이 전역을 개시했습니다. 진주만 공습과 거의 같은 시각이었습니다. 일본 제국 육군은 태국을 거쳐 말라야 반도로 남하했고, 그 결과 1942년 2월 영국은 싱가포르에서 축출당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말라야에서 밀려난 영국 연방군은 싱가포르 기지로 철수했습니다. 공중전에서 패배했고 일본 항공기의 압도적인 물량에 시달렸지만, 그들은 여전히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요새 안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했습니다. 해상 침공에 대비해 모든 병력과 포병은 유일하게 공격 가능하다고 여겨진 남쪽 방면에 집중 배치되어 있었고, 북쪽은 정글과 맹그로브 숲이라는 천연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정글과 맹그로브 지대를 포병이나 전차로는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자전거를 탄 보병이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난공불락의 싱가포르가 7일 만에 무너진 비밀, 자전거를 탄 일본군의 정글 돌파

자전거를 탄 일본군은 정글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진격했고, 여러 전선으로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영국군이 대응할 새도 없이 북쪽 방어선은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난공불락이라던 요새는 단 7일 만에 함락되었고, 인도인·영국인·호주인 등 8만 명이 넘는 포로가 발생했습니다.

처칠은 이 참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

난공불락의 싱가포르가 7일 만에 무너진 비밀, 자전거를 탄 일본군의 정글 돌파
출처 및 이미지: 역사 학습 사이트, Historynet, 싱가포르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