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512명의 미군 비행사를 구출한 숨은 영웅, 미국이 그를 인정하기까지 66년이 걸렸다

2010년 10월 14일, 뉴욕 맨해튼의 세인트 사바 세르비아 정교회 대성당에서 특별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95세의 고령이었던 조지 부이노비치(George Vujnovich)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OSS(전략 서비스국), 즉 CIA의 전신으로 불리는 미국 정보기관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 스타 명예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예가 그에게 돌아오기까지 무려 6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512명의 미군 비행사를 구출한 숨은 영웅, 미국이 그를 인정하기까지 66년이 걸렸다

조지 부이노비치

조지 부이노비치는 누구였나?

1915년 5월 31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세르비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부이노비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41년,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면서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는 여러 나라를 거쳐 아프리카로 피신했고, 이후 팬암 월드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에서 근무했습니다.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배경과 베오그라드에서 보낸 수년간의 경험 덕분에 OSS는 그에게 주목했고, 결국 그를 영입합니다.

한편 미국으로 망명한 그의 아내 미르자나는 워싱턴 주재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독일군에 격추된 미군 비행사들을 구출해 숨겨준 세르비아 게릴라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녀는 1943년부터 이 정보를 이탈리아 남부에 주둔 중이던 남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게릴라들은 바로 체트닉(Chetniks)이었습니다. 드라고류브 미하일로비치(Dragoljub Mihailovich) 전 유고슬라비아 참모 대령이 이끄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성향의 군주주의 게릴라 조직이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침공 이후, 국토는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에 분할 점령되었고, 꼭두각시 정권인 크로아티아 독립국과 세르비아 구국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이 밖에도 티토 원수가 이끄는 공산주의 파르티잔 해방군을 비롯한 각종 준군사조직이 전역에 난립했습니다. 체트닉은 독일군의 압도적인 전력과 혹독한 보복 앞에서, 독일이 약해질 때까지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대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반면 독일군이 소련 침공에 병력을 쏟아부은 시기에는 적극적인 저항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체트닉과 파르티잔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체트닉은 파르티잔과의 싸움에서 독일군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512명의 미군 비행사를 구출한 숨은 영웅, 미국이 그를 인정하기까지 66년이 걸렸다

체트닉 — "왕과 국가를 위하여, 자유 아니면 죽음"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이 성공한 뒤인 1943년 가을,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부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같은 해 말, 미국 제15공군은 튀니지에서 이탈리아 포자(Foggia)로 전진 기지를 옮겨, 히틀러가 핵심 연료 공급원으로 여기던 루마니아의 유정과 정유소 폭격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폭격기들이 유고슬라비아 영공을 횡단해야 했고, 그중 상당수가 격추되었습니다. 무려 500명이 넘는 미군 항공병들이 체트닉에 의해 구출되어 은신처를 제공받게 됩니다.

이탈리아 바리(Bari)에 있던 부이노비치는 구출 작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처음에는 체트닉 지도자 미하일로비치가 독일군과 공개적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관들의 반응이 미지근했지만, 계획서를 검토한 끝에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일리어드 작전(Operation Halyard)'입니다. 부이노비치는 적진 깊숙이 침투할 세 명의 OSS 현장 요원들에게 임무를 하달했고, 1944년 8월 무선 송신기를 지참한 이들은 낙하산을 타고 체트닉 통제 구역에 투입되었습니다.

512명의 미군 비행사를 구출한 숨은 영웅, 미국이 그를 인정하기까지 66년이 걸렸다

오른쪽이 부이노비치, 함께 있는 구조된 미군 공군들

바리의 부이노비치는 현장 요원들과 미하일로비치의 도움을 받아 구출 작전을 총괄했습니다. 수개월에 걸쳐 즉석 활주로를 마련하고 안전한 대피 거점을 확보하는 가운데, 추락한 미군 비행사들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전원 구조되었습니다. 구출된 인원은 총 512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역사는 냉정했습니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 당국은 미하일로비치를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처형했습니다. 1948년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그에게 공로훈장을 사후 수여했지만, 유고슬라비아와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부이노비치 자신의 공로 또한 2010년에야 비로소 공식 인정받았으며, 그는 2012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처: Daily Mail, NBC News, The Tele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