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륙 전야, 레지스탕스의 활약과 독일군의 혼란
상륙이 임박한 시기, 프랑스 국내군(F.F.I.) 소속 500명의 마키(maquisards)가 벌인 기습과 첩보 활동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의외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는데, 연합군이 어디에 상륙할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노아, 아드리아해, 니스-칸과 마르세유-툴롱에 대한 동시 공격 등 여러 가능성이 거론되었습니다.
독일군의 혼란은 교묘한 기만 작전으로 더욱 깊어졌습니다. 마르세유 근처 라시오타(La Ciotat)에 대한 기습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영국 왕립공군(R.A.F.) 기 5대가 지면에 닿으면 발사되는 것처럼 보이는 미니어처 모형 300개를 쏟아붓였고, 이 기만술에 넘어간 독일군은 마르세유에 병력 수송선 500척이 정식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제노아로 향하는 척, 그리고 60도 선회
연합군 함대가 상륙 해안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독일군 진영에는 여전히 혼란이 감돌았습니다. 8월 14일,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정찰기가 북쪽으로 항해하는 함대를 발견하고 이것이 제노아를 향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정찰기들은 허위 정보를 안은 채 기지로 돌아갔습니다.
같은 날 밤 10시 18분, 휴잇(Hewitt) 부제독은 좌현으로 60도 선회를 명령했습니다. 연합군 함대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프랑스 남부 해안을 향해 질주했고, 자정 무렵에는 해안에서 약 20km 떨어진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특공대의 결사적 임무: 카프 네그르와 에스테렐
주력 상륙 부대가 다음 날 오전 8시라는 예정 시각을 기다리는 동안, 프랑스 특공대들은 주 상륙 지역 양측에서 몰래 침투했습니다. 하나는 카발레르쉬르메르(Cavalaire-sur-Mer) 위쪽의 카프 네그르(Cap Nègre), 다른 하나는 칸 서쪽의 에스테렐(Esterel) 절벽이었습니다. 동시에 미국과 캐나다 병력으로 구성된 제1특수부대 군단은 예르 제도의 르방 섬과 포르크로 섬에 상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거점은 다음 날 상륙 작전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위협 요소였습니다. 카프 네그르는 해발 120m 절벽 위에 150mm 포 3문과 전기식 화염방사 장치를 갖춘 요새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카프 네그르와 두 섬은 계획대로 탈환되었지만, 포르크로 섬은 8월 17일이 되어서야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에스테렐 절벽의 비극
반면 에스테렐 절벽에서는 참담한 실패가 빚어졌습니다. 프랑스 특공대원 67명 중 42명이 해변에 매설된 지뢰밭 위에 내착한 것입니다. 폭발물을 칸-생라파엘 도로에 설치하려던 시도마저 실패한 생존자 25명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이 실패로 상륙 지역 중 특히 민감한 구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침공 당일 독일군 증원 부대에 그대로 열려 있게 되었습니다.
작전 '러그비': 르뮈 상공의 대규모 공수 투하
'드라군' 작전 개시 전날 밤에는 해상 특공대 공격과 더불어 '러그비(Rugby)'라는 코드명의 대규모 공수 투하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투하 지역은 드라귀냥(Draguignan)이 아니라 르뮈(Le Muy) 인근, 논밭과 숲으로 덮인 구릉지대 약 40㎧였습니다.
로버트 T. 프레더릭(Robert T. Frederick) 소장의 지휘 아래, 미국·영국·프랑스 출신 보병, 포병, 공병 5,000여 명으로 구성된 제1공수임무부대(1st Airborne Task Force)가 로마에서 C-47 다코타와 C-53 수송기 396대에 나눠 탑승했습니다. 새벽 4시 22분, 마지막 병사가 강하를 마쳤습니다.
낙하산 부대가 착지할 때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일부 병력은 목표 지점에서 무려 35km나 떨어진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럼에도 르뮈 인근에서는 산발적인 저항만 있었고, 공수부대는 비교적 평온하게 도로 차단선과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며 다음 날 오전 8시 상륙 작전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8월 15일 하루가 끝나기 전에는 C-47 다코타에 견인된 워코(Waco)와 호르사(Horsa) 글라이더 400대 이상이 추가 병력 4,000명과 중장비를 싣고 르뮈 인근에 착륙할 예정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제공권, 19분간 16,000발의 함포 사격
같은 날 '드라군' 작전에 배정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군은 4,249개의 추가 임무를 수행했으며, 그중 4,000개가 상륙 엄호 임무였습니다. 반면 독일 공군은 겨우 60회 출격에 그쳤고, 모두 무의미한 비행이었습니다.
8월 15일 연합군의 공중 작전은 해안 방어진지에 대한 90분간의 폭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폭격이 끝난 직후 오전 7시 30분, 군함의 함포 400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해변과 후방 지역에 포탄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독일군은 오전 7시 47분까지 기묘할 만큼 침묵을 지켰다가, 해안에서 3km 내륙에 자리한 카발레르와 라몰(La Mole) 포대가 반격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응사는 바다에서 쏟아지는 포화에 비하면 처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전 7시 49분 함포 사격이 종료될 때까지, 연합군 함선들은 단 19분의 연속 사격 동안 무려 16,000발의 포탄을 쏟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