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의 신탁이 세운 도시, 키레네
에라토스테네스가 태어난 고대 그리스 도시 키레네(현재 리비아)는 기원전 632년경 델포이 신탁의 조언에 따라 산토리니 섬 테라 출신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건설했습니다. 이 도시는 빠르게 번영하여 지중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키레네가 수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가지 식물이 있었습니다. 이 식물은 도시의 주요 생산물이었을 뿐 아니라, 동전에까지 그 모습이 새겨질 정도로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이 식물을 실피움(Σίλφιον)이라 불렀으며, 서식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겼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만능 약재
실피움의 사용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어 지중해 전역의 문화권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집트인과 미노아인 모두 자신들의 문자 체계에 실피움을 나타내는 특정 기호와 상형문자를 두었을 정도입니다. 음식의 조미료, 향수, 최음제, 약재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었으며, 로마인들은 이를 라세르피키움(laserpicium)이라 불렀습니다. 수액은 맛과 향이 뛰어나 금이나 은만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활용법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줄기는 굽거나 삶아 먹었고, 뿌리는 식초에 절여 신선하게 먹었습니다. 양에게 먹이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고 알려졌으며, 꽃은 각종 요리의 조미료로 갈아 사용되었습니다. 약으로서는 거의 모든 병을 고친다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는데, 대플리니우스는 치질, 동물 물림, 상처에 효과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특히 최음제이자 역사상 최초의 효과적인 피임약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며, 하트 모양의 씨앗이 사랑의 상징과 연결된 이유라고 믿어집니다.

기록 속에서만 남은 식물
문제는 오늘날 실피움이 정확히 어떤 식물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고대 작가들, 특히 로마 시대 저술가들의 기록 덕분에 존재 자체는 분명히 알려져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공식 재무부에 약 680kg의 실피움을 비축해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카이사르 사후 100여 년 뒤 대플리니우스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키레네에서 단 한 줄기만 발견되어 뿌리째 뽑혀 서기 54년에서 68년 사이 네로 황제에게 헌상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플리니우스는 또한 실피움이 더 이상 키레네에서 공급되지 않고 페르시아, 메디아, 아르메니아에서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해당 지역에서는 상당히 풍부하게 자랐지만 키레네산보다 질이 크게 떨어졌고, 고무나 으깬 콩이 섞여 도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멸종의 원인은 과잉 착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식물이 멸종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플리니우스(직접 본 적은 없음)는 실피움이 야생 식물이며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재배를 시도하면 땅이 황폐하고 메마른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또한 실피움을 인식하는 방법도 남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를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간주합니다. 플리니우스가 지어낸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서기 1세기 중반 실피움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며, 주된 원인은 키레나이카가 로마 원로원의 속주가 된 이후 과잉 착취가 이루어지고 기존의 엄격한 채집 통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
테오프라스투스를 비롯한 고대 작가들의 상세한 묘사와 키레네 동전에 새겨진 수많은 형상에도 불구하고, 실피움은 결코 만족스럽게 확인된 적이 없습니다.
현재 유력한 이론 중 하나는 실피움이 자연 잡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씨앗으로 재배를 시도했을 때 결과물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많은 잡종 식물은 종자가 아닌 뿌리를 통해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며, 2세대는 원래 식물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리비아 식물상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실피움이 어딘가 외딴 곳에 여전히 숨어 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작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가장 정확한 묘사는 테오프라스투스의 기록입니다.
후보 1: 페룰라 팅기타나
테오프라스투스는 실피움을 '아사페티다 줄기'와 비교했습니다(플리니우스가 말한 페르시아산 실피움일 가능성). 시리아와 파르나소스 산기슭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회향과 유사한 특징을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실피움이 북아프리카에서 잡초처럼 자라는 아사페티다류 식물과 동일할 수 있다고 보며, 그중 하나인 페룰라 팅기타나(Ferula tingitana)는 리비아에 아직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 식물을 실피움으로 믿고 있습니다.
후보 2: 카크리스 페룰라케아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를 집필한 역사가 플라비우스 아리아누스가 남긴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기 2세기에 알렉산드로스가 힌두쿠시(로마인들이 '인도 코카서스'라 불렀던 곳)를 어떻게 넘었는지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합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으로 진출하기 약 200년 전, 키레나이카의 바르카 도시 인구 상당수가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박트리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이 추방민들이 실피움 씨앗을 함께 가져갔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1990년대 초, 로마 대학교의 고고학자 안토니오 마눈타(Antonio Manunta)는 키레나이카에서 카크리스 페룰라케아(Cachrys ferulacea) 표본을 발견했습니다. '커먼 바실리스크'라고도 불리는 이 식물을 실피움과 같은 종으로 여긴 현지 베두인족은 마눈타를, 실피움이 대량으로 자랐고 고대에 번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곡으로 안내했습니다. 마눈타는 이 식물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에 좋은 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는 디오스코리데스가 "리비아산 실피움에는 아사페티다 특유의 강한 냄새가 없다"고 기록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마눈타에 따르면 실피움으로 제안된 모든 후보 식물 중 이 씨앗만이 하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카크리스 페룰라케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마기다리스(magidaris)'라고 부르던 식물과 동일하며, 당시 기록들은 이 식물과 실피움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찾는 사람들, 아직도
오늘날까지 연구자들은 실피움이 눈앞에 숨어 있다는 확신 속에 탐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코바로 아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식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