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1월 16일, 미 육군 항공대(USAAF) 소속 B-24 폭격기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격추되어 보르네오 정글 한복판에 추락했습니다. 승무원 10명 중 7명은 비행기가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가까스로 낙하산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련은 이제부터가 진짜였습니다.

보르네오 정글에 추락한 B-24 폭격기의 승무원들
생존자들은 일본군 수색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신속히 사고 지점을 벗어나 이동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나아간 방향에 더 큰 공포의 대상, 즉 '머리 사냥(headhunting)' 전통으로 악명 높던 보르네오 원주민 다야크(Dayak)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야크족과의 만남은 우호적이었고, 이는 조종사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었습니다. 다야크족은 추락한 조종사들을 마을로 모셔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일본군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철저히 숨겨주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두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섬을 오가며 다야크족 복음화를 진행해 서구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섬을 점령한 일본군이 선교사들을 학살하고 원주민을 탄압하면서, 다야크족 사이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몇 달 동안 조종사들은 다야크족과 함께 정글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분무기(블로우건)를 다루는 다야크족
1945년 3월 25일, 인류학자이자 영국군 장교인 톰 해리슨(Tom Harrison)이 Z 특수부대, 즉 군단 규모의 호주 특수작전부대(SOA) 소속 호주 대원 7명과 함께 섬에 낙하산으로 강하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일본 점령지 배후 작전을 위해 창설된 이 부대는 추락한 조종사들의 구출과 다야크족의 대일 저항 조직화라는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부대는 곧 원주민들과 접촉해 섬 탈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대피 계획이 검토되는 동안 해리슨은 다야크족을 단순한 수동적 저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글 게릴라전으로 이끄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대의 머리 사냥 관습마저 부활하게 되었는데… 다야크족 게릴라들은 일본군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다야크족의 도움으로 빽빽한 정글의 평평한 지역을 개간하고 대나무로 착륙장을 만들어 소형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졌습니다. 섬에서 7개월을 보낸 후인 1945년 6월, 미국 조종사들은 비로소 보르네오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1945년 당시의 다야크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