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은 병 입구에 퓨즈 역할을 하는 헝겊 조각을 꽂아 만든, 가장 널리 알려진 소이병입니다. 헝겊에 불을 붙여 던지면 유리병이 깨지는 순간 인화성 물질이 사방으로 퍼지며 화염에 닿아 타오르는 원리입니다.

이름의 유래,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
이 무기의 이름은 비야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Viacheslav Mijáilovich Skryabin), 즉 '몰로토프(망치)'로 더 잘 알려진 인물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1939년 독일 외무장관 리벤트로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독소 불가침 조약에 서명한 소련 외무장관이었습니다.
1939년 11월,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합니다(겨울 전쟁).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붉은 군대의 압도적인 수적·군사적 우위를 앞두고 핀란드인의 저항은 미미할 것이며 해가 지나기 전에 핀란드 전토를 정복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오판이었습니다. 핀란드군의 저항은 겨울 내내 이어졌고, 전쟁은 1940년 3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보전과 선동의 대가였던 소련은 여러 라디오 방송에서 "폭탄이 아니라 핀란드 국민을 위한 식량 꾸러미를 투하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병에 담긴 소이탄을 비롯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소련의 위세에 맞서던 핀란드인들은, 이 황당한 선전에 유머로 화답하기로 결심합니다.
"식량을 보내주거라, 우리가 음료(몰로토프 칵테일)를 대접하겠다."

이로써 이런 유형의 소이병은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사용자는 핀란드인이 아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술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핀란드인이 아니라 스페인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스페인 내전 당시, 소련이 공화파에 지원한 T-26 및 T-28 전차에 맞서 싸운 프랑코 진영의 군대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트릴(Motril · 그라나다)에서 벌어진 사례 가운데 동일한 특징을 지닌 또 하나의 소이병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1831년의 '도밍게스 칵테일(Domínguez Cocktail)', 일명 '요셉 칵테일(Josef Cocktail)'입니다. 1831년 7월자 마드리드 관보(Gazeta de Madrid)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칼라혼다(Calahonda)와 아드라(모트릴 해안) 사이 해상에서, 요셉(Josef)이라는 이름의 스페인 해안경비대 펠루카(범선)가 밀수선 한 척에 접근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소속을 묻자 두 문의 캐로네이드(짧은 해군포) 사격으로 답했고, 좌우 포격을 뚫고 간신히 승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와중에 펠루카호 선장은 불병(화염병) 여러 개를 밀수선 쪽으로 던졌고, 그 결과 밀수선 선원들은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상자와 부상자를 포함해 18명이 구조되었으며, 이후 밀수선에서 추가로 8명이 발견되었습니다. 배에는 12파운드 캐로네이드 2문과 각종 밀수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한편 펠루카호에서는 승선대를 지휘하던 경찰 중위 돈 마누엘 호세 도밍게스(Don Manuel José Domínguez)와 선원 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처럼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은 1939~40년 겨울 전쟁에서 탄생했지만, 병에 담아 던지는 소이병이라는 발상 자체는 100여 년 전 스페인 해안경비대의 실전 기록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염병의 진짜 원조, 바로 '도밍게스 칵테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