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는 사회당·공산당·급진당이 연합하여 인민전선이 결성되었습니다.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는 이 연합을 '중간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동맹'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인민전선은 혁명이 아닌 온건한 개혁 노선을 표방했으며, 구호 역시 '빵, 평화, 자유'였습니다. 이러한 절제된 강령 덕분에 인민전선은 1936년 4~5월 총선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파업의 발생과 전국적 확산
르아브르와 툴루즈에서 5월 1일 근무를 거부했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을 계기로 대규모 파업 운동이 촉발되었습니다. 파업은 빠른 속도로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주요 인물
- 레옹 블룸(Léon Blum): 인민전선 내각의 수반이 된 사회당 지도자
-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ez):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 에두아르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급진당 지도자
- 레옹 주오(Léon Jouhaux):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지도자
파업의 경과
인민전선의 선거 승리에 대한 열광은 역설적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약 200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원되었으며, 이번 파업운동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양상을 보였습니다.
- 노동자들은 생산을 무력화하기 위해 직장 시설을 점거했습니다.
- 설비를 파손하지 않는 등 평화롭고 모범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 강경한 탄압 없이 우호적이고 형제애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파업은 금속 산업에서 시작하여 제조업은 물론 상업 분야까지 확대되었으며,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직원들이 매장을 점거한 장면은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비혁명적 노선의 상징이던 CGT 지도자 레옹 주오는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유지하며 위기의 평화적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했습니다.
마티뇽 협정의 체결과 주요 내용
노동조합과 정부 간의 협상 끝에 1936년 6월 7일 마티뇽 협정이 체결되어 여러 사회적 성과가 이루어졌습니다.
- 임금 인상
- 노동조합권의 보장 및 준수
- 근로자 대표제 도입 등 종업원 대표 기구의 모태 마련
- 단체교섭 협약의 일반화
이후에도 파업 운동이 지속되면서 노동자의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새로운 권리가 추가로 확보되었습니다.
- 주 40시간 근무제 실시
- 2주(15일) 유급휴가 도입
결과와 영향
- 마티뇽 협정은 상징적이고 법적으로 노동자 권리의 커다란 진전을 의미했습니다.
- 노동 계층에 큰 희망을 안겨 주었으며, 문화와 여가를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실현된 인본주의의 이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정부의 반격, 연립 정부 내부의 분열로 인해 레옹 블룸의 개혁 동력은 중단되었고, 그는 결국 1937년 6월 20일 사임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