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아버지의 날입니다. 하지만 이 날을 앞두고 쏟아지는 선물 광고와 프로모션 속에서 본래의 취지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부모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감사 대신, 구매를 부추기는 상업적 메시지가 자리를 차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아버지날이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를 가리는 어떤 기준도 없이, 모두에게 '무조건 축하받는 날'로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매달 억지로 돈을 주고, 방문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이 좋은 아버지일까요? 경제력을 앞세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속이고, 자녀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삶으로 내몰았다면 어떻습니까? 그들의 "좋은" 아버지가 준 선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나친 선물 문화는 이런 문제를 넘어, 존경받을 자격조차 없는 이들이 직장이나 친지들로부터 화려한 축하와 향응을 받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날은 대체 어떤 역사에서 출발했을까요?
아버지의 날의 진짜 유래, 1909년 한 딸의 마음에서
1년에 한 번 부모님의 사랑을 기리는 일이 오늘날에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날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날짜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념일이 아닙니다.
아버지날의 유래는 1909년 6월 19일, 미국에서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라는 여성이 자신의 아버지인 헨리 잭슨 스마트(Henry Jackson Smart)를 기리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내(소노라의 어머니)가 여섯 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면서 홀아비가 되었습니다. 워싱턴 주의 한 시골 농장에서 그는 홀로 여섯 자녀의 양육을 맡아냈습니다. 소노라 스마트는 아버지가 훌륭한 본보기였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생일인 6월 19일을 아버지의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가 기념일로 자리 잡기까지
소노라의 제안은 여러 카운티와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아버지의 날이 전국적으로 공식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24년에 이르러서야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이 아버지의 날을 국가적으로 제정하자는 구상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이 6월 셋째 일요일을 미국의 아버지날로 선포하는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나라마다 다른 아버지의 날, 같은 마음
이 기념일은 미주 대륙 대부분의 지역에서 6월 셋째 일요일에 기념됩니다. 반면 스페인과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는 날짜가 달라지는데, 이는 3월 19일에 지내는 나사렛 예수의 아버지인 성 요셉의 축일과 함께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는 전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이 날의 본질은 같습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고, 그들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