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에 관한 기사를 발행한 뒤, 한 독자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것은 책이 아니라 원고 두루마리일 뿐"이라며 날카롭게 지적해 온 적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지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독자가 놓친 핵심은 하나입니다. 두루마리 역시 '책'의 한 형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코덱스(codex)도 책의 한 형태이고, 최근 등장한 전자책 역시 또 다른 형태입니다.
그 독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것이었을 겁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코덱스' 형태의 책은 없었다는 것.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면, 그곳에는 책이 있었습니다. 다만 두루마리 형태였을 뿐입니다.

일부 독자는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코덱스란 우리가 지금 '책'이라 부르는 형식 그 자체입니다. 수세기 동안 코덱스 외의 형식이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형태를 '책'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물론 두루마리와도 코덱스와도 완전히 다른 전자책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책은 언제, 왜 두루마리가 아닌 코덱스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요? 역사학자들의 대체적인 합의에 따르면, 이 전환은 로마 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로마인들은 이미 밀랍을 발리고 끈으로 연결한 나무 판을 필기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서기 1세기경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장철한 '공책' 형태의 코덱스가 등장하게 됩니다.

같은 시대의 시인 마르티알리스(Marcial)는 자신의 작품집을 코덱스 형태로 묶어 팔며 그 편리함을 찬양했습니다. 손쉽게 읽을 수 있고, 양피지 두루마리보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며, 무엇보다 들고 다니기 편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공간의 절약과 읽기의 용이성은 새 형식을 보급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덱스의 본격적인 확산은 기독교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코덱스를 선호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성경의 참고 구절을 양피지나 파피루스 두루마리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헤르쿨라네움과 함께 매몰된 파피루스 빌라의 도서관에 남겨진 책들은 모두 두루마리였습니다. 반면 서기 390년경으로 추정되는 나그함마디(Nag Hammadi) 문서관의 텍스트는 모두 코덱스였습니다.

형식이 로마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흥미롭게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코덱스 파편은 이집트에서 출토되었으며 서기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코덱스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합니다. 제지술의 비밀이 서양에 전해지기까지는 아직 600년이 더 걸릴 예정이었으니까요. 종이 제조법이 퍼진 계기는 탈라스(Talas) 전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랍인과 중국인 사이의 대규모 충돌이 확산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종이로 만들어진 유럽 최초의 책은 약 1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편 16세기경 메소아메리카의 원주민들도 무화과나무 껍질이나 식물성 섬유 조각으로 만든, 유럽 고대 코덱스와 놀랍도록 유사한 형식을 독자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야 코덱스와 아즈텍 코덱스의 탄생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두루마리에 비한 코덱스의 장점은 재료의 경제성에 있었습니다. 코덱스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한 면만이 아닌 양면 모두에 쓸 수 있게 해주었고, 두루마리의 순차적 접근 방식 대신 원하는 곳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무작위 접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코덱스가 발명되자마자 두루마리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6세기에 이르면 양피지 두루마리는 필기 매체로서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오늘날 모든 책은 코덱스입니다. 다만 '코덱스'라는 용어 자체는 주로 중세의 필사본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