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북서부 트렘센주, 울레드 미문 시 인근에 위치한 알타바(Altava)는 6세기경 마우로-로마 왕국의 뒤를 이어 북아프리카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기독교 베르베르 왕국의 수도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라모리시에르(Lamoricière)'로 불리던 이 도시는 708년까지 존속하며 로마 문명의 전통을 계승한 동시에, 아랍-이슬람 세력의 서진(西進)에 맞선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했다.
로마의 변방에서 자립한 베르베르인의 땅
알타바는 본래 누미디아의 테베스테(Theveste)와 누메루스 시로룸(Numerus Syrorum, 현 마그니아)을 잇는 '노바 프라이텐투라(Nova Praetentura)' 가도 상에 자리한 군영(castrum)에서 시작됐다. 제2 사르도니아 대대(Cohort II Sardorum)가 주둔하며 도로를 지키던 이 정착지는 점차 자치권을 가진 비쿠스(vicus)로 성장했고, 포럼과 신전(후에 교회로 전환)을 갖춘 도시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은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Mauretania Caesariensis) 속주를 설치해 해안 도시인 카이사레아(현 셰르셸)와 셉툼(현 세우타) 위주로 통치했으나, 내륙 깊숙한 곳까지 완전한 지배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 틈새에서 베르베르족은 로마의 위기(3세기 위기, 서로마 멸망)를 틈타 세력을 규합했다.
마우로-로마 왕국에서 알타바 왕국으로
477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베르베르족은 로마화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마우로-로마 왕국(Regnum Maurorum et Romanorum)'을 세웠다. 이들은 반달족의 아리우스파 강요에 맞서 정통 기독교를 수호하며 로마의 법제와 행정, 군사 제도를 계승했다. 508년 비문 속 마수나(Masuna)는 스스로 '마우로인과 로마인의 왕(Rex gentium Maurorum et Romanorum)'을 칭하며 알타바, 카스트라 세베리아나, 사파를 다스렸다.
동로마 제국(비잔티움)과 동맹을 맺고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지원을 받아 반달족을 몰아낸 마수나 사후, 마스티가스(Mastigas)는 카이사레아를 제외한 구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 전역을 장악했다. 이들은 명목상 콘스탄티노플의 종주권을 인정하며 두스(dux) 칭호를 쓰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 국가로 기능했다. 마지막 왕 가르물(Garmul)이 동로마와 비시고트족의 틈을 타 공세에 나섰으나, 578년 마기스테르 밀리툼 겐나디우스(Gennadius)에게 패배하며 왕국은 멸망하고 아프리카 관구(Exarchate of Africa)에 편입됐다.
알타바 왕국의 부활과 이슬람과의 조우
가르물 사후 영토는 와르세니스, 호드나 등 소왕국으로 분열됐으나, 알타바를 수도로 한 왕국이 가장 강력하게 재건됐다. 578년부터 670년까지 기록이 희박한 '암흑기'를 지나, '로마인' 세케르키드(Sekerkid)가 등장한다. 로마계 후손으로 보이는 그는 680년경 산하야(Sanhaja) 연맹의 수장 쿠사일라(Kusaila, 라틴명 케킬리우스)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쿠사일라는 자나타, 마스무다, 아우라바 부족을 아우르는 지도자로, 비잔티움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던 기독교도로서 이슬람 세력에 맞설 최적의 인물이었다.
쿠사일라와 카히나: 최후의 저항
후대 이슬람 사료에 따르면 쿠사일라는 칼리프 아부 알무하지르의 권유로 개종하고 협력했으나, 후임 총독 우크바 이븐 나피(Uqba ibn Nafi)의 오만함에 반발해 비잔티움과 손잡고 683년 베스케라 전투(Battle of Vescera)에서 아랍군을 대파, 튀니지 동쪽으로 몰아내고 북아프리카의 패자가 됐다. 그러나 5~7년 뒤 우마이야 군대가 맘마 전투(Battle of Mamma)에서 승리하며 쿠사일라는 전사했다.
이후 저항의 구심점은 전사 여왕 디히아(Dihia, 아랍명 알카히나 al-Kāhina)에게로 넘어갔다. 야라와(Yarawa) 부족의 지도자이자 기독교도였던 그녀는 '마녀/점성가'라는 뜻의 별명처럼 예지력으로 유명했으며, 노구의 몸으로 여러 전투에서 이슬람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698년 카르타고가 함락되어 비잔티움의 지원이 끊기자 추종자들이 이탈했고, 결국 타르파(Tarfa) 인근에서 최후를 맞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죽기 전 자녀들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유언했는데, 이는 지중해 세계가 이슬람 문명권으로 재편될 것임을 예감한 상징적인 장면으로 전해진다.
역사적 의의
알타바 왕국은 로마 문명의 유산(행정, 법률, 기독교, 도시 문화)을 북아프리카 내륙에서 200년 이상 계승하며 독자적인 정치체를 유지한 드문 사례다. 이들은 반달족과 비잔티움, 그리고 마침내 아랍-이슬람 제국이라는 거대 세력 사이에서 '로마의 후예'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저항했다. 708년 알타바의 함락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던 북아프리카 기독교 문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슬람 마그레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알리는 종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