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로마 숫자(I, V, X, L…)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봤을 만큼 익숙합니다. 소수나 음수를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수를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단순한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원리는 간단합니다. I는 1, V는 5, X는 10, L은 50, D는 500, M은 1000을 나타내며, 기호의 위치에 따라 값을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조합합니다. 다만 매우 큰 수를 표기하려면 새로운 기호를 계속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흥미로운 사실은, 이 로마 숫자 체계가 에트루리아인에게서 유래했고, 에트루리아의 체계 역시 그리스인에게서 파생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숫자를 적었을까요?

고대 그리스에는 두 가지 숫자 체계가 공존했습니다. 하나는 숫자 단어의 첫 글자를 따온 '아티카(Attic) 숫자', 즉 약어식 체계이며, 다른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일부 사용되는 밀레시안(Milesian) 체계입니다.

아티카 숫자: 글자의 첫머리에서 온 숫자

'아티카 숫자'라는 이름은 이 체계가 기원전 7세기부터 1세기까지 아티카 지역의 모든 공공 비문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붙었습니다. 또한 기원전 5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는 대부분의 다른 그리스 도시에서도 쓰이다가, 이후 밀레시안 체계로 대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이 체계는 '아크로포닉(acrophonic)'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1을 뜻하는 기호를 제외하면, 각 숫자를 나타내는 단어의 첫 글자를 그대로 기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대응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Ι = 1
  • Π = 5 — πεντε(pénte, 다섯)
  • Δ = 10 — δεκα(deka, 열)
  • Η = 100 — 헤카톤(hekaton, 백)
  • Χ = 1,000 — χιλιοι(chílioi, 천)
  • Μ = 10,000 — μυριας(myrias, 만)

여기에 50, 500, 5,000, 50,000을 표기할 때는 문자 π(파이)의 오른쪽 모서리에 해당하는 10의 거듭제곱 기호를 덧붙였습니다. 예컨대 2021년은 XXΔΔΙ로, 49는 ΔΔΔΔΠΙΙΙΙ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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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시안 체계: 알파벳으로 숫자를 쓰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밀레시안 체계는 기원전 5세기, 아나톨리아 반도 서해안 이오니아 지역의 도시 밀레투스(Miletus)에서 발전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그리스 도시에서 아티카 숫자를 대신하게 됩니다.

이 체계는 각 숫자에 이오니아 그리스 알파벳의 문자를 하나씩 할당하는 '준십진수 알파벳 체계'입니다. 특히 십의 자리와 백의 자리는 낮은 자릿수를 더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지정된 전용 문자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사용된 문자는 수학자 유클리드가 확립한 24개의 그리스 알파벳에, 페니키아·이오니아 계통에서 유래했지만 알파벳에는 포함되지 않은 3개의 문자가 더해진 것입니다. 바로 6을 나타내는 디감마(Ϝ), 90을 나타내는 코파(ϙ), 900을 나타내는 삼피(Ϡ)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문자와 숫자는 어떻게 구분했을까요? 숫자 위에 가로 막대를 얹거나, 끝에 악센트 기호를 붙여 구별했습니다. 숫자는 덧셈으로 형성됩니다. 각 문자의 값을 모두 더하면 전체 값이 되는데, 예를 들어 753은 ψνγ'로 표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1,000 이상의 수는 같은 단위·십·백 문자를 재활용하되, 작은 수와 구별하기 위해 반전된 악센트나 앞에 쉼표를 붙였습니다. 따라서 2021은 ͵βκα'이 됩니다. 숫자는 소문자와 대문자 어느 쪽으로도 적혔으며, 경우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배열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코파처럼 일부 문자는 다른 문자로 대체되거나, 디감마처럼 단순화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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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은 없었지만 분수는 있었다

흥미롭게도 고대 그리스에는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야 도입된 숫자 0의 기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수를 표현하는 방법은 존재했습니다.

아티카 체계에서는 2분의 1을 오른쪽으로 열린 반원으로, 4분의 1을 왼쪽으로 열린 반원으로 표시했습니다. 밀레시안 체계에서는 각 문자 끝에 붙는 샤프 악센트(acute accent)가 분수를 의미했습니다. 예를 들어 δ'ϛ'는 1/4 + 1/6, 즉 5/12를 뜻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밀레시안 체계는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그리스에서 서부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병행 사용되고 있습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남은 숫자 체계라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발상이 얼마나 실용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