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73년 라타키아 해전…이스라엘 해군, 시리아 함대 완파하다

1973년 라타키아 해전…이스라엘 해군, 시리아 함대 완파하다

1973년 10월,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일)에 맞춰 기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삼면의 압박에 놓인 이스라엘은 바다에서도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해군의 위협으로부터 지중해를 "청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해군 총사령관이 되는 요미 바르카이의 지휘 아래, 미사일 고속정 5척(사르 3급 4척, 사르 4급 1척)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함대가 시리아 항구 라타키아로 출항했습니다.

밤바다의 첫 교전, 어뢰정부터 침몰시키다

1973년 10월 7일 밤 10시 28분, 라타키아에 접근하던 이스라엘 함대는 시리아 K-123 어뢰정을 발견했습니다. 시리아 함선은 이스라엘 고속정 2척이 쏟아부은 76mm 함포 사격에 신속하게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어 이스라엘 함대는 시리아의 T-43 초계정을 포착했고, 자체 개발한 가브리엘(Gabriel) 함대함 미사일 2발로 격침시켰습니다. 밤 11시 30분경에는 소련제 미사일 고속정인 시리아의 코마르(Komar)급 2척과 오사(Osa)급 1척을 추가로 발견했는데, 이들 함정은 P-15 미사일(나토 코드명 SS-N-2 스틱스)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전자전으로 뒤집은 판세

문제는 사거리였습니다. 당시 스틱스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가브리엘보다 두 배 가까이 긴 사거리를 자랑했습니다. 역시 이스라엘 함대를 감지한 시리아 함정들이 선수를 쳐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스라엘군은 플레어와 전자전 대책(ECM)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미사일을 모두 회피·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위기를 넘긴 이스라엘 함대는 과감히 가브리엘 미사일의 사거리 안으로 진입, 미사일 5발을 일제히 발사했습니다. 미사일은 연달아 명중해 시리아 미사일 고속정 2척을 침몰시켰고, 나머지 1척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습니다. 파송된 함정은 도주를 시도했으나 얕은 수심에서 좌초했고, 결국 이스라엘 함포 사격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우발적 희생자까지 발생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항구 내에 정박해 있던 다른 시리아 함선들도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적 함대는커녕 항만에 계류 중이던 그리스 화물선과 일본 화물선을 피격시키는 오사를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참패를 당한 뒤 시리아 해군은 더 이상 함선 한 척을 출항시키지 못할 만큼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해전사에 남긴 의미

라타키아 해전은 양측 모두 함대함 유도 미사일을 장비한 함정들이 맞붙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해상 전투였으며, 동시에 전자전 수단으로 승패가 결정된 최초의 해전이라는 점에서 군사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열세인 사거리를 전자전으로 극복한 이 사례는 이후 세계 각국 해군의 미사일 방어 전술 발전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