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도시, 고대 아테네
고대 아테네는 지중해 세계에서 문화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수많은 축제로 유명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말경 아테네는 1년 중 약 120일을 공휴일로 보냈으며, 이는 평균 3일에 한 번꼴로 축제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아테네 정치체제(Constitution of the Athenians)의 저자(일명 위크세노폰)는 기원전 440~420년경 집필한 저서에서 "아테네는 다른 어떤 그리스 도시보다 더 많은 축제를 치른다"고 불평할 정도였습니다.
판아테나이아 축제와 람파데드로미아
이 모든 축제 중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도시의 수호신 아테나를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축제(Panathenaic festival)였습니다. 종교·예술·체육이 어우러진 이 축제는 아티카력 첫 달인 헥카톰베온(7월 말~8월 초) 이틀 동안 열렸으며, 4년마다 나흘짜리 대축제로 확대되었습니다.
주요 행사는 케라메이코스에서 아크로폴리스까지 새로 짠 페플로스(여신 의상)를 운반하는 행렬과 파르테논 앞 제단에서의 제사였습니다. 이 밖에도 운동 경기와 남성 미인 대회인 '에반드리아(evandria)' 등이 열렸습니다.
성화 봉송 경주, 람파데드로미아(lampadedromia)
체육 종목 중 단연 독특한 것은 람파데드로미아(또는 람파데포리아)라 불리는 횃불 계주 경기였습니다. 아티카 시민만 참가할 수 있었던 이 경기는 프로메테우스를 기리는 '프로메테아스'와 헤파이스토스를 기리는 '헤파이스티아스' 등 불의 신과 연관된 축제에서도 치러졌습니다.
경기 방식과 규칙
부족 대항전과 김나시아르코스
경기는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으로 편성된 10개 아티카 부족(필라이) 간의 대항전이었습니다. 매 경기마다 5개 부족이 출전했으며, 각 부족은 김나시아르코스(gymnasiarch)를 임명해 자비로 40명의 주자를 선발하고 훈련시켰습니다. 이는 일종의 공공 부담금(리트우르기아) 성격이었습니다.
코스와 거리
- 출발: 도시 밖 1마일(약 1.6km) 떨어진 아카데메이아의 프로메테우스 제단에서 횃불에 불을 붙인 뒤, 성벽 옆 케라메이코스 묘지에서 탑 위에서 횃불을 던지는 신호로 시작했습니다(아리스토파네스 기록).
- 경로: 디필론 문을 지나 폼페이온과 아고라를 가로질러 판아테나이코스 대로를 따라 아크로폴리스까지 달렸습니다.
- 거리: 총 6스타디온(약 1.1km) 정도였습니다.
- 규칙: 각 부족의 첫 주자가 약 25m를 달려 다음 주자에게 횃불을 넘겼습니다. 횃불이 꺼지지 않게 이어받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출발점이 아카데메이아였다고 기록해, 시대나 축제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졌거나 변경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상금과 영예
우승은 횃불이 켜진 채로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부족에게 돌아갔습니다. 개인 승리가 아닌 단체 승리였으며, 현대 육상 계주와 같은 개념입니다. 우승 부족은 아테나의 신성한 올리브나무에서 짠 기름을, 아테나 프로마코스(최전선에서 싸우는 자) 상과 경기 장면이 새겨진 판아테나이코스 암포라에 담아 받았습니다. 부족은 김나시아르코스의 경제적 부담에 감사하며 월계관이나 기념비를 헌정했습니다.
현대 올림픽 성화 봉송의 기원?
일각에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칼 디엠(Carl Diem)이 이 고대 계주에서 영감을 받아 성화 봉송 계주를 도입했다고 봅니다. 1936년 6월 30일 올림피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성화가 채화된 이래, 모든 하계 올림픽에서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대적 변화와 확산
- 플라톤 시대: 최초로 기마 횃불 경주가 등장했습니다.
- 로마 시대(파우사니아스 기록): 계주 형식이 사라지고 개인 경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여성과 어린이: 여성부와 아동부 경주도 열렸습니다.
람파데드로미아는 아테네뿐만 아니라 마그나 그라이키아(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 그리스 세계 전반에서 행해진 고유한 문화 행사였으며, 로마인들은 이를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리에서 부활한 전통
오늘날 이탈리아 나폴리 시가 이 전통을 되살려, 매년 6월 말 람파데드로미아(횃불 계주 하프 마라톤)을 개최하며 고대 그리스의 불꽃을 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