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1682~1815):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부터 나폴레옹 격퇴까지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1682~1815):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부터 나폴레옹 격퇴까지로마노프 왕조가 이끈 러시아 제국은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의 통치를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제국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발트해 연안 국가와 폴란드, 발칸 반도까지, 남쪽으로는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 동쪽으로는 시베리아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원래 러시아 공국은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몽골-타타르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462년 즉위한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Ivan III)는 몽골 세력을 자신의 보호 아래 통합하며 러시아 영토 확장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 비해 여전히 약하고 뒤처져 있었습니다. 17세기 말, 근대 러시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 바로 표트르 대제였으며, 러시아 제국은 캐서린 2세와 알렉산더 1세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3의 로마에서 러시아 확장까지

타타르의 종주권이 유지되던 수세기 동안 모스크바는 동쪽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주된 확장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러시아인들은 정교회 신앙을 통해 비잔틴 제국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뒤,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로서의 위상을 갖게 됩니다. 비잔틴 제국 마지막 황제의 조카 조이와의 혼인을 통해 이반 대공은 비잔틴 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를 자신의 문장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반 4세(재위 1533~1584)는 1547년 차르('카이사르'에서 유래한 황제 칭호)로 즉위하며 이러한 정통성을 공식화했습니다. 그가 사망할 무렵 러시아 영토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타타르족을 격파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시베리아까지 뻗쳤지만, 발트해 방면으로의 서진은 스웨덴과 폴란드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이반 4세는 귀족(보야르)의 권력을 제한하고 그들의 토지를 몰수했으며, 공포 정치를 펼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보야르가 그의 친위대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끔찍한 이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1682~1815):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부터 나폴레옹 격퇴까지1604년부터 1613년까지 이어진 '혼란의 시대'는 러시아 서부 대부분을 황폐화시킨 내전의 시기였습니다. 이 분쟁은 1917년까지 통치하게 되는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한편 인구는 시베리아의 강을 따라 계속 동쪽으로 이주했고, 1637년 러시아인들은 마침내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교역 거점을 세워 모피를 미주 대륙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수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가 언제나 이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천연자원은 풍부했지만 인력 부족과 통신·교통의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노제가 제도화되었습니다. 농민들은 노예에 가까운 조건으로 평생 한 영주에게 묶여 살아야 했고, 귀족들 역시 차르의 신하로 예속되었습니다. 16세기에는 유럽과의 상업·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모스크바에는 상인, 장인, 예술가, 지식인, 성직자로 구성된 번영하는 서구인 공동체가 자리 잡았습니다.

표트르 대제, 러시아를 서방에 개방하다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1682~1815):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부터 나폴레옹 격퇴까지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의 통치는 러시아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세 전임자 역시 제국의 서구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한 바 있지만, 표트르 대제는 제국을 근대 유럽 열강의 대열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697년부터 1698년까지 그는 특히 조선술 분야의 서구 기술을 배우기 위해 프로이센,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군대를 재편했고, 1700년에는 발트해로 통하는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그곳에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습니다. 우랄 지역에서는 이곳의 풍부한 광석 매장지를 활용하기 위해 철과 구리 주조 공장을 세웠습니다. 나아가 그는 신하들에게 서양식 복장을 명하고, 귀족들에게는 전통적인 러시아식 수염을 깎도록 지시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농노들은 제국의 대규모 사업을 지원할 세금을 비롯해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았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농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에 강제 동원되어 수천 명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이 새로 설립한 공장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농노제를 더욱 확대하기까지 했습니다.

18세기 러시아 제국

18세기 내내 러시아는 꾸준히 팽창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를 할양해야 했고, 1783년 세바스토폴이 함락되면서 흑해가 러시아 상인들에게 열렸습니다. 동쪽에서는 시베리아의 모피 상인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진출해 1784년 알래스카에 최초의 유럽인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가장 광대한 영토를 합병한 곳은 서쪽이었습니다. 약화되는 폴란드를 둘러싸고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함께 1772년부터 1795년까지 폴란드 분할에 가담했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열린 비엔나 회의(1815)에서는 폴란드 왕국의 잔여 영토가 러시아에 넘어갔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1682~1815):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부터 나폴레옹 격퇴까지이러한 업적 상당수는 독일 출신 군주 캐서린 2세(예카테리나 대제)의 통치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1762년 남편이자 표트르 대제의 손자인 표트르 3세가 사망하자 즉위한 그녀는 1796년까지 절대 군주로서 통치했습니다. 그녀는 예술에도 깊은 열정을 보였는데, 특히 건축이나 음악보다 회화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녀가 수집한 그림 컬렉션은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전시된 국립 소장품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초청으로 많은 독일인들이 러시아, 특히 새로 정복한 흑해 북부 지역에 정착해 생산적인 농업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다른 유럽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예카테리나 2세에게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우려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혁명가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유럽 전역으로 퍼뜨리려 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로이센, 영국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1796년에는 아들 파벨 1세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인도 정복을 위해 코사크 연대를 파견하는 등의 기이한 구상 끝에 1801년 암살당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아들 알렉산더 1세는 스웨덴을 희생시키며 핀란드를 병합했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지만,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는 오히려 그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궤멸 직전에 이른 프랑스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차르 알렉산더와 동맹군은 유럽 전역에서 이들을 추격했습니다. 1814년 러시아군은 파리에 입성했고, 이를 통해 러시아는 유럽 열강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됩니다.

참고문헌

- 미셸 헬러(Michel Heller), 『러시아와 제국의 역사』, 템퍼스, 2015.

- 피에르 고노(Pierre Gonneau), 『러시아의 역사: 끔찍한 이반에서 니콜라스 2세까지 1547-1917』, 탈랑디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