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최초의 역사 비극과 속편을 탄생시킨 그리스 극작가 프리니코스

오늘날 우리는 속편이라는 개념에 매우 익숙합니다. 영화, 소설, 때로는 음악까지, 한 작품이 성공하면 곧바로 후속편이 등장해 흥행의 명맥을 잇곤 하죠.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속편이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프리니코스(Phrynichus)입니다.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기원전 6세기 말, 대략 기원전 540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던 어느 시점, 그는 역사상 최초의 남자 배우이자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테스피스(Thespis)를 만나 제자가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프리니코스 역시 비극 장르의 탄생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첫 번째 사건은 기원전 511년 또는 510년, 제목이 전해지지 않는 작품으로 연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일입니다. 우승작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크타이온, 알케스티스, 알테아, 플레우로스의 여인들, 안타이오스(또는 리비아인들), 다나이드 가문, 이집트인들, 탄탈로스 등 모두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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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극사적 공헌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합창단의 노래만으로 구성되던 무대에 합창단장이 아닌 독립된 배우를 등장시켜, 연극적 대화와 약강격 운율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또한 합창단이 등장하기 전 서두 부분인 '프롤로그'를 창안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대의 아이스킬로스는 탄원자들 같은 일부 비극에서 프롤로그를 활용했지만, 페르시아인들에는 프롤로그가 없었습니다.

기원전 494년, 그는 인생의 걸작이자 연극사의 전환점이 된 역사 비극 밀레토스 함락을 선보입니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플롯을 구성한 최초의 비극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리스 비극에서 처음으로 여성 인물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지나치게 사실적인 무대 연출로 인해 작가가 벌금을 물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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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즉 이오니아 반란 과정에서 페르시아군이 밀레토스를 함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도시의 모든 주민은 티그리스 강 하구 근처 페르시아만 연안의 암페(Ampe)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리스 본토에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만이 소아시아 이오니아 도시들의 반란을 지원했기 때문에, 아테네인들에게 밀레토스의 함락은 뼈아픈 타격이었습니다.

도시가 함락된 지 불과 몇 달 만이었기에, 관객들의 반응은 아테네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공연 중 극장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이 작품의 상연은 금지되었습니다.

최초의 역사 비극과 속편을 탄생시킨 그리스 극작가 프리니코스

그러나 프리니코스는 이 아픈 경험을 지혜롭게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관객을 눈물짓게 만든 자신의 역사 비극이 완전한 성공이었다고 판단한 그는, 18년 후 속편을 준비했습니다. 그 이전에 속편을 선보인 연극은 없었으므로, 속편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프리니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편의 제목은 페니키아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기원전 476년 대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소재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고, 아테네 관객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이야기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초의 역사 비극과 속편을 탄생시킨 그리스 극작가 프리니코스

프리니코스가 속편의 길을 열자, 동시대의 라이벌 아이스킬로스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4년 뒤 페르시아인들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고, 레기움의 글라우코스(기원전 400년경)에 따르면 페니키아 여인들의 도입부를 모방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아가 아이스킬로스는 3부작을 발명하며 속편의 세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프리니코스는 기원전 470년, 당대 다른 시인들처럼 폭군 히에론(Hiero)의 후원을 받기 위해 시칠리아로 건너간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완전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일부 단편은 후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자 프란시스코 미겔 델 린콘(Francisco Miguel del Rincón)에 따르면, 프리니코스는 정의로운 사람들, 페르시아인들 또는 협의회 동료들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역사 드라마를 쓸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