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에 사용된 약용 치료법 중 상당수는 고대의 학자들과 의사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일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떤 것들은 구전으로, 또 어떤 것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필사본에 기록의 형태로 전해졌다. 그중에는 서구의 치유사, 약재상, 의사들이 매일처럼 사용했다고 알려진 치료법들도 있는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적지 않다.
성 바울의 물약: 장내 가스, 기억력, 위장 문제
성 바울에게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이 물약에는 감초, 세이지(샐비어), 버드나무, 장미, 회향, 계피, 생강, 정향, 가마우지의 피, 만드라게, 용혈수(드래곤 블러드), 그리고 세 가지 종류의 후추가 들어갔다.
각 재료의 효능을 살펴보면 나름의 논리가 보인다. 감초는 기관지염과 기침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세이지는 기억력을 높이고 뇌로 가는 혈류를 개선한다고 여겨졌다. 버드나무에는 살리실산이 들어 있어 항염 작용을 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아스피린의 핵심 성분이다. 회향, 계피, 생강은 탄산 가스를 배출시키는 작용, 즉 가스 제거 효과가 있어 위경련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마우지의 피는 무슨 역할이었을까? 빈혈 환자에게 철분을 공급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성이 있는 만드라게는 소량만 쓰면 불면증에 효과적인 약재가 된다. '용의 피'라 불린 것은 실제로는 드라고 나무(Dracaena draco)의 수지로, 카나리아제도, 카보베르데, 모로코 등 아열대 지역에서 자란다. 이 수지는 방부제, 항생, 항바이러스, 상처 치유 물질로 활용되었으며, 일부 지역 사회에서는 이질 치료에도 사용했다.
좌골신경통 치료법
중세의 의학서에는 좌골신경통에 대한 처방도 기록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안정을 취하고 통증 부위에 온열 요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복잡한 약재에 의존하기보다, 충분한 휴식과 열찜질만으로도 염좌나 신경통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통하는 처방이다.
화상과 찰과상 치료법
이 민간요법은 물집을 줄이고 통증을 덜어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핵심 재료는 달팽이 점액이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달팽이 점액에는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방부, 진통, 항자극, 항염 효과는 물론 항생 및 항바이러스 성질도 있고 콜라겐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달팽이 점액이 이미 오랫동안 상업적으로 판매되며 베인 상처, 화상, 찰과상 같은 피부 손상 치료에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세의 치료법이 현대 화장품·의약 시장에서 되살아난 셈이다.
다래끼 치료법
10세기 중반의 앵글로색슨 필사본으로, 영국 도서관에 소장된 『발드의 리치북(Bald's Leechbook)』에는 다래끼 치료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양파와 마늘을 잘게 다진 뒤 소의 쓸개즙과 포도주를 함께 청동 그릇에 넣고 잘 섞어 며칠간 재워 두는 방식이다.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처방이다. 양파, 마늘, 소 쓸개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 다래끼를 일으키는 세균에 효과를 낼 수 있다. 포도주의 초산은 9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청동 그릇의 구리와 반응해 구리 염을 생성하는데, 이 구리 염은 강력한 살균 작용을 한다. 실제로 노팅엄 대학의 연구팀이 이 처방을 실험했고, 황색포도상구균을 비롯한 세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결과를 확인했다.
통풍(곳병) 치료
통풍에 사용된 물약 역시 중세의 처방에 기반했는데,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경악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동물을 희생해야 하는 이런 종류의 처방은 당시에는 드물지 않았으며, 고통에 시달리던 환자들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물론 위생이나 안전 측면에서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다.
편두통 치료법
편두통의 기본 처방에는 베토니(Stachys officinalis)와 마편초가 들어갔다. 베토니는 튜더 시대의 약제사들이 갖가지 질환의 달임약과 국소용 파스의 기본 재료로 사용한 약초였다.
주목할 점은 현대 의학도 여전히 베토니에 함유된 알칼로이드 성분의 약물을 편두통과 심한 두통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편초에서 추출한 배당체 역시 오늘날 편두통, 우울증, 불안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심한 목감염의 경우
통풍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이 처방에서도 동물이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살집이 좋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을 제거한 뒤 완벽하게 세척되어야 했다. 여기에 고슴도치 기름, 곰 기름, 수지, 호로파(페누그릭), 세이지, 인동덩굴 검, 순수 밀랍을 준비한다. 모든 재료를 잘게 다져 고양이 거위처럼 속을 꾸준히 채운 다음, 통째로 굽고 나온 기름을 환자에게 발랐다고 한다. 물론 이런 처방은 현대 의학에서 전혀 근거가 없으며, 감염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기침 치료
기침에는 호레하운드(horehound)의 즙을 짜서 디아페니디온(diapenidion)과 섞어 먹었다. 호레하운드는 꿀풀과에 속하는 식물로 기침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아페니디온은 꿀이나 시럽에 약재를 개어 만든 연미제( electuary )로, 보리물, 설탕, 달걀 흰자를 넣어 만든 준비약이었다. 재료만 놓고 보면 지금의 목캔디나 시럽과 비슷한 발상이라 할 만하다.
위장에 효험 확실한 물약
복통의 원인이 되는 가스를 없애려면 커민과 아니스를 같은 양으로 섞어 포도주에 담근다. 그 위에 포도주를 더 부어 혼합물이 완전히 잠기게 한 뒤 삼일 삼야(3일 3夜) 동안 두었다가, 꺼내어 재판 위에 9일간 올려 둔다. 그다음 전체를 꺼내 항아리에 넣고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 준다. 이 가루를 스튜나 찌개, 달임약에 넣어 먹으면 산통의 원인인 가스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커민과 아니스 모두 가스를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는 약재로,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효능이 성공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중세의 치료법 가운데 일부는 현대 과학으로 그 유효성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통째로 굽는다든가 하는 처방은 결코 따라 해서는 안 되며, 질환이 생기면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